[시론] 한국은행 채권시장 발전에 앞장서라..李昌鏞 <서울대 교수>
입력
수정
李昌鏞
콜금리가 9개월째 연3.75%에 머물자 '한국은행이 하는 일이 뭐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은은 한은대로 할 말이 있다.
일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경제상황과 관계없이 금리를 변경할 수 없는 일이다.
금융감독 권한이 정부에 있으니 금리밖에는 정책수단이 없다는 한탄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한은이 금리정책만 붙들고 있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채권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금리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다.
단기 금리를 조절해도 중장기 금리가 따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은이 그간 발행해온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은 발행량이 국채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표 채권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지표 채권이 되려면 정례적으로 채권이 발행되고 발행조건이 표준화돼야 하지만 지금까지 통안채 발행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한은이 최근 통안채 91일물 발행을 정례화하고 이를 단기 지표 채권으로 육성키로 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통안채 정례발행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통안채 입찰에 국채 전문 딜러제도를 활용하고 지표물은 국채처럼 장내시장인 증권거래소를 통해 거래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걸음마 단계에 있는 국채전문딜러제도를 활성화시키고 채권시장의 투명성과 유동성도 함께 높여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존의 '국채전문딜러''국채장내거래시스템'이란 명칭이 꺼려지면 국채와 통안채를 포괄하도록 '지표 채권 전문딜러''지표 채권 장내거래'로 이름을 바꾸면 된다.
한은과 재정경제부가 협력해 채권시장 발전에 힘쓴다면 부처간 협력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한은은 RP(환매조건부채권)시장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RP란 금융기관이 일정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이다.
사실상 채권을 담보로 한 자금차입 성격을 갖기에 금융기관의 단기차입 수단으로 널리 사용된다.
선진국에서는 RP시장 규모가 국채시장보다 큰 것이 일반적이며 이를 통해 채권의 유동성을 높이고 다양한 자산운용 기법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2002년에야 RP장내시장이 개설됐고 거래도 미미한 수준이다.
금융기관들이 RP보다 콜시장을 통해 단기차입을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콜시장 참여자를 지급준비 의무가 있는 예금은행으로 한정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1979년 콜시장을 개설하면서 시장 활성화를 위해 은행 뿐 아니라 보험회사 투신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까지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콜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두가지 문제점이 초래됐다.
첫째는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콜시장에서 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어 RP시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콜시장이 채권시장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콜시장 참여자의 신용도가 천차만별이라 콜금리가 실제 자금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콜금리가 낮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자금이 풍부할 때 오히려 예금은행들이 기타 금융회사들에 대출을 늘림에 따라 차입자의 평균 신용도가 낮아져 콜금리가 올라가기도 한다.
이 경우 콜금리는 시장 자금사정 외에 참여자간 신용도 차이까지 반영하기 때문에 결국 금리신호가 왜곡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제 콜시장이 충분히 발전한 만큼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콜시장 참여자는 예금은행으로 제한하고 기타 금융회사의 단기자금 거래는 RP시장으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채권시장 발전과 함께 콜금리 신호도 개선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은이 단기 지표채권과 RP시장 활성화를 통해 채권시장 발전에 앞장서면 시장의 존경과 함께 금리정책의 유효성 제고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rhee5@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