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 '팔릴 만큼만' 옷 만든다

LG패션 마에스트로 캐주얼팀원들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이라는 요즘 의욕이 넘친다. 전체 물량 중 통상 30%는 재고라는 패션업계에서 스탠드칼라형 모직 점퍼의 재고율을 단 5%로 줄이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재고율 5%는 주목할 만한 수치다. 바로 소비자 반응에 따라 제품 출하를 조절하는 QR(quick response·즉각 반응) 생산이 비결. 마에스트로팀이 스탠드칼라 점퍼를 QR 생산키로 한 것은 작년 가을. 내수 경기 침체를 우려한 팀은 향후 판매량을 지켜보면서 추가 생산 여부를 결정키로 하고 작년 9월 초도 물량으로 3백90벌만 생산했다. 한 달 뒤쯤 27%가 판매되자 LG는 11월 두 차례에 걸쳐 9백38벌을 추가 생산했다. 이후 12월까지 전체 생산량의 76%가 판매되자 남은 겨울 기간을 감안해 7백64벌을 더 만들어 매장에 깔았다. 올 2월 매장에서 철수한 이 점퍼의 최종 판매율은 95%에 달했다. 내수 침체가 지속되자 패션업계에 QR 생산이 확산되고 있다. 업체들은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제품을 미리 기획해 생산하는 메인 오더를 크게 줄이는 대신 QR 생산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다. 나산은 '조이너스'의 올 봄 신상품 메인 오더를 작년 75%에서 65%로 줄이고 QR 생산을 25%에서 35%로 늘렸다. 신원도 지난 2002년(봄·여름) 16%에 불과했던 '베스띠벨리'의 QR 비중을 지난해 20%로 올린 데 이어 올해는 다시 23%로 높일 예정이다. 제일모직의 경우 올 가을·겨울 상품 중 QR 생산 비율을 작년 20%에서 25∼30%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LG패션도 올 가을·겨울 신규 브랜드를 제외한 닥스 마에스트로 등 8개 기존 브랜드의 QR 비중을 지난해 17%에서 최대 35%로 늘린다. 김문현 LG패션 MD지원팀 부장은 "잘 팔리는 물건은 즉시 추가 생산하고 인기 없는 제품은 생산을 줄일 수 있어 최고 1백50억~2백50억원의 재고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신원 노길주 홍보판촉팀장은 "외환위기 때 재고로 몸살을 앓은 패션업체들이 QR를 추진했지만 경기가 좋아지면서 흐지부지됐다"며 "최근 경기가 다시 얼어붙어 재고 부담이 커진 데다 늦봄에도 폭설이 내리는 등 이상기온으로 QR가 업계의 화두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