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법 찾자] (1) '바세나르 협약의 네덜란드'


파업이 없고 유럽에서도 노사관계가 가장 안정된 나라 네덜란드.


이 나라에서는 안정된 노사관계만큼이나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 문제는 전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근로자들이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있고 기업들은 고도로 탄력적인 인력관리를 무기로 삼고 있다.


실제로 여성의 70%가 파트타임 근로자일 정도로 네덜란드는 비정규직의 천국이다.
남성(19%)을 합친 파트타임 비율은 지난 2000년 현재 41%.


유럽연합 평균의 2배 수준이다.


특히 지난 20년간 새로 만들어진 2백만개의 일자리 가운데 80%가 파트타임으로 채워졌다.

이는 90년대 이후 경제가 살아나면서 기업, 근로자 모두가 파트타임을 원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지난 4월26일 암스테르담 시내에 위치한 네덜란드노총(FNV)을 방문했을 때 에릭 펜텡가 정책자문관은 "직장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여성의 대부분이 파트타임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트타임 제도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노조가 반대할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간당 임금이나 휴일 사회보장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근무형태에 따른 갈등도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현재 네덜란드 노동시장에서의 비정규직 비율은 파트타임과 파견근로자, 기간제 근로자를 합칠 경우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넘는 것으로 노사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는 어떻게 이처럼 파트타이머의 천국이 되었을까.


노동 전문가들은 주저없이 "고용 안정과 맞바꾼 노동시장 유연성"이라고 대답했다.


고용 안정과 비정규직의 동등 대우를 위해 노사가 맺은 '뉴코스 협약'(93년)과 '유연성과 고용안정 협약'(96년)이 체결된 이후 파트타임 고용이 급속도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인 것도 비정규직이 뿌리내리게 된 주요인으로 꼽힌다.


네덜란드 경영자연합회(VNO-NCW)의 십 뉘우스마 노사관계 담당 선임자문관은 "파트타임 근로자는 임금에서 정규직과 차이가 크지 않은 데다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해 오히려 노조에서도 환영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노총의 펜텡가 자문관도 "노동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이라며 "다른 유럽국가 노조들이 아직도 임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 비정규직이 많은 또다른 이유는 서로 협력하고 신뢰하는 모범적 노사관계가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주 네덜란드 한국대사관의 홍지인 참사관은 "네덜란드에서도 대학을 나온 남성은 사회적으로 출세를 하기 위해 정규직으로 취직하려는 동기가 강하지만 비정규직이 전혀 기피대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많은 근로자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해고 역시 법적으로는 까다롭지만 사업장 단위에서는 손쉽게 이뤄진다.


경영자연합회의 뉘우스마 선임자문관은 "기업들이 해고하려면 전국에 산재한 노동부 관할 26곳의 사무소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해고를 못하는 경우는 없다.


실제로는 정리해고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말했다.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었던 지난 82년 노사가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이후 20여년간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네덜란드.


그러나 독일 등 유럽경제가 침체되면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75%(추정치)로 추락하는 등 최근에는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실업률 또한 2001년 2.4%에서 지난해에는 6.0%까지 치솟는 등 고용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노사는 지난해 11월 2004~2005년 2년에 걸쳐 임금 인상을 동결키로 합의, 침체에 빠진 경제환경에 공동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

암스테르담=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