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일자) 경제계 건의 묵살이 능사인가

경제 5단체 부회장단이 긴급회동을 갖고 정부의 기업정책을 정면 비판했다는 것은 정부에 대한 재계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경제계의 수많은 건의를 한가지도 들어주지 않고,오히려 노동계의 입장만 수용하는 등 최근의 정책 변화는 재계가 감내할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걱정이기도 하다. 재계가 가장 당혹스러워 하는 대목은 출자총액제한제도 유지,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계좌추적권 재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노조의 경영참여,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다. 대통령 정책특보인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정위의 대기업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서도 재계의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경제5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서 티끌만한 의구심도 버려달라고 부탁한지 열흘도 안돼 이런 정책들이 나오니 재계의 불신이 증폭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부와 재계가 갈등국면까지 내닫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내 '개혁파'들이 경제현실을 무시한채 너무 원론적인 접근방식만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이들의 주장처럼 기업지배구조를 국제수준에 맞추고 회계 투명성을 높이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문제는 정책의 타이밍이다. 특히 경제정책은 다른 정책들과는 달리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적절한 때를 맞추지 못하면 부작용만 커지게 된다. 때문에 국내외 경제 상황을 직시하고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우선순위와 완급을 가려 시행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정말 어렵다. 기업투자감소와 소비부진이 지속되면서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다. 최근엔 석유값이 배럴당 40달러까지 치솟는 등 대외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국제관례를 무시하면서 우리 제품의 수입통관을 보류하는 등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의 생존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을 정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정위는 경제계의 건의를 철저히 묵살하면서, 같은 정부내의 재경부도 반대하는 정책들을 강행하고 있다. 그것이 '개혁'이라면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있었던 관주도 경제정책의 발상과 결코 다를바 없다.정부는 지금 재계와의 기싸움에서 이기려고 고집피울 때가 아니다. 재계와 논쟁을 벌일게 아니라 기업들이 왜 투자를 하지 않는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나라 경제를 살리는 진정한 '개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