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법 찾자] (4) '법ㆍ관행 정착된 미국'


경영학석사(MBA)인 윌리 윙필드씨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6개 기업들로부터 IT(정보기술) 관련 자문을 받아주고 있다.


인력파견업체에서 소개받은 회사들이다.
그는 이들과 대부분 1개월에서 3개월 정도로 계약을 맺었다.


윙필드씨는 2년전 해고당했다.


정규직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기업은 없었다.
그나마 6개 회사에서 임시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윙필드씨만이 아니다.


뉴욕시 브루클린에 사는 스티브 이스라엘도 2년 전 루슨트테크놀로지에서 해고된 후 단기 인력공급업체인 맨해튼의 '템포지션스'를 통해 IT 매니저 자리를 찾았다.
미국에서는 단순직은 물론 전문 서비스 직종에도 임시직을 선호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워싱턴DC에 있는 조지타운대학은 연구원, 회계감사원, 장학금 담당자까지도 인력 파견업체에서 전문가들을 받아 쓰고 있다.

미국에서 말하는 비정규직의 형태는 다양하다.


윙필드씨처럼 인력파견업체에 소속된 단기 파견근로자(temporary help agency workers)는 물론 비정규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파트타이머(part-time workerㆍ단시간근로자), 일용 건설인부, 도급계약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


기관마다 분류가 달라 정확한 규모를 산출하는게 쉽지 않다.


조지아대학의 제프리 웽거 교수가 경제정책연구소(EPI)에 있을 때 노동부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비정규직은 2001년 기준으로 전체 근로자의 17.1%였다.


파트타이머가 12.8%로 가장 많았다.


2년 전인 1999년에 비하면 비정규직이 조금 줄었다.


웽거 교수는 "99년과 2000년은 경기가 좋았던 때여서 비정규직이 감소했을 수 있지만 2001년 이후 경기가 나빠지면서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다만 전문 서비스 직종 중심으로 단기파견 근로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을 쓰더라도 정규직과의 갈등이나 각종 복지 혜택을 둘러싼 회사와의 충돌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채용할 때부터 근로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job descriptionㆍ직무분석)가 분명하고 그에 따른 보상도 미리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5명이 하루 4시간 정도 일하면 3개월가량 걸리는 데이터 입력 작업이 생겼다고 하자.


기업은 일의 내용을 분명하게 고지하고 급여도 얼마를 줄 것인지 확정해 사람을 구하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 채용된 비정규직은 당초 계약 이외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고용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 못지 않은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미국 기업들은 임의고용(employment at will) 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기업은 필요에 따라서 근로자들을 채용하거나 해고하며 근로자들도 언제든지 직장을 옮길 수 있다는게 고용의 대원칙이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거나 기업은 잘 뻗어나가지만 자신의 기여도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해고당한다.


한국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메릴린치로 옮긴 H씨의 경험담."이틀 전 회의가 끝난 후 동료를 찾는다는 사내 방송이 나왔는데, 그 후로 보이지 않더군요. 업무 협의차 부르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H씨는 그렇게 해고된 동료처럼 자신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혀를 찼다.


그런 H씨에겐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구분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기업들이 해고를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 미국 현지법인의 최승남 본부장은 "해고되는 근로자가 인종이나 나이, 남녀 구별에 따라 차별당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공정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부담 등에서 벗어나 인력 관리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임시직을 쓰는 기업들이 많다.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원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파트 타이머는 보통 주당 근무시간이 35시간이 안 되는 단시간 근로자다.


그렇지만 주당 30시간이 넘어서면 이들에게도 정규직처럼 의료보험 혜택을 주는 기업도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이런 의료보험 지급 부담을 피하기 위해 근무 교대를 빈번하게 시키기도 한다.


12년 전 마이크로소프트가 임시직 문제로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단기파견업체에서 근로자들을 받아 무려 14년이나 고용, 정규직처럼 활용했으면서도 임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에게 주는 혜택을 배제해 소송을 당했다.


이런 사건 등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법상으로나 관행상으로 정착된 것이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