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姙경제? ‥ 실질 설비투자 8년째 제자리

설비투자 규모가 외환 위기 당시 수준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8년 전 수준에서 답보, 성장잠재력이 그만큼 취약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명목투자액에서 물가 변동치를 제거한 실질 설비투자액(2000년 기준)은 지난해 71조4천3백59억원을 기록, 2002년의 72조5천5백64억원에 비해 1조1천2백5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실질 설비투자액은 규모면에서 지난 95년(71조2천2백60억원)과 거의 같은 수준이며, 96년(77조7천5백92억원)에 비해서는 8.1% 줄어든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들이 예전과 달리 신규 사업진출에 소극적인데다 국내외 사업환경의 불투명 등으로 설비투자가 8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며 "이같은 투자부진은 우리 경제 전반의 성장잠재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질 설비투자액중 선박 항공기 철도차량 트럭 등 운수장비 투자액은 지난해 15조5천99억원으로 전년(17조1천8백38억원)에 비해 12.4% 줄었다. 정밀기계 일반기계 전기전자기계 등 기계류 투자액도 작년 56조3천7백60억원을 기록, 96년(57조8천9백9억원) 수준에 못미쳤다. 이와 함께 설비투자 건설투자 등으로 이뤄지는 실질 총고정자본 형성은 작년 1백98조3천7백86억원으로 95년(1백81조3천4백52억원)보다 9.4% 많았다. 실질 건설투자액이 1백5조6백59억원에서 1백16조5백75억원으로 10조원 가까이 증가한 덕분이지만, 총고정자본 증가율은 지난해 3.6%에 그쳐 2002년(6.6%)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기업들의 투자는 수요와 수익성이 있고 기업들이 투자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수요측면에서 특별한 투자요인이 없을 뿐 아니라 투자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조건도 형성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같은 시설투자 부진을 반영, 은행들의 시설자금 대출도 지난해 58조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지난 96년 27조원에 비해 30조원가량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중 운전자금 대출이 1백49조원에서 4백80조원으로 2백31조원이나 급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체 대출금에서 시설자금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95년 1ㆍ4분기(1∼3월) 15.8%에서 96년 15.9%로 높아진 이후 계속 줄어 올 1ㆍ4분기에는 10.6%까지 떨어졌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이와 관련, "기업들의 설비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기업과 노동조합이 투자와 고용확대를 함께 추구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은 투명한 경영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은행들도 기업의 합리적인 투자를 적극 뒷받침하며 정부는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