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휴대폰 팔기 바쁘다

'1모, 2방, 3카, 4펀…' 요즘 은행 영업점 직원들 사이에 이런 '계명(?)'이 유행하고 있다. 은행 업무의 중요도 순서다. 풀어 말하면 '첫번째는 모바일뱅킹 권유, 두번째는 방카슈랑스 판매, 세번째는 신용카드 권유, 네번째는 펀드 판매'라는 얘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순위에서 전통적인 예금 및 대출 업무는 한참 뒷전으로 밀려 있다. 은행 직원들, 특히 지점장들이 꼽는 영업점의 중요 업무는 대략 13가지. 고객에게 판매 또는 권유해야 하는 업무가 모바일뱅킹, 방카슈랑스, 신용카드, 펀드, 대출, 환전, 예금, 인터넷뱅킹, 복권 및 상품권 판매 등 9가지다. 이중 대출은 중요도에서 다섯번째, 예금은 일곱번째쯤으로 꼽힌다. 이밖에 연체 관리, 주거래 고객 유도(CRM), 고객만족(CS), 직원 사고 예방 등 판매와 관련 없는 4가지 업무가 추가된다. 이처럼 그동안 부수업무로 취급돼 왔던 방카슈랑스나 펀드판매 등이 주요 업무로 떠오른 것은 영업점 평가방식이 수익 위주로 바뀐 게 주된 이유다. 방카슈랑스나 펀드는 팔자마자 상당한 수수료 수입을 남긴다. 대출처럼 사후관리 필요성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리스크(위험)는 적고 수익성은 높으니 지점들이 2금융권 상품 판매에 더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국민 우리 하나 신한 조흥 외환 등 6개 시중은행이 판매한 제2금융권 펀드는 6조4천5백70억원이나 늘었다. 워낙 저금리인 탓에 은행상품을 권할만한 상황이 되지 못하는 것도 제2금융권 상품 판매를 부채질하고 있다. 1년 만기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3%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고객에게 권하기엔 낯간지러운 수준이다. 더욱이 예금을 유치한다고 해도 남는 이익이 별로 없다. 자칫하면 잉여자금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본점의 눈총을 사기 십상이다. 모바일 뱅킹은 은행들이 전략적 차원에서 가입을 독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미래형 채널을 선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지점별 직원별로 모바일뱅킹 목표를 할당한 은행들도 상당하다. 덕분에 모바일 뱅킹 가입자는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은행 영업점의 이런 변화로 인해 은행은 이제 '금융 백화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뱅킹이 대표적이다. 모바일뱅킹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전용휴대폰을 구입해야 한다. 따라서 은행원들의 "모바일뱅킹에 가입하라"는 권유는 곧 "휴대폰을 사라"는 말로 들리기 일쑤다. 은행 업무 변화가 빚어낸 새로운 풍속도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