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강 .. 이팔성 <우리증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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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한강을 따라 출퇴근한다.
강을 따라 쭉 뻗어있는 강변북로와 강 저편의 올림픽대로를 보고 있노라면 바쁜 출근시간의 와중에도 깊은 상념에 젖는 때가 있다.
한강을 따라 줄지어 선 아파트들과 그 너머의 고층빌딩들은 팍팍한 삶의 가쁜 숨을 느끼게 한다.
강변도로에 가득 찬 차량들은 그 가쁜 숨마저 힘들게 한다.
하지만 시선을 내려 유유히 흐르는 강을 보면 금세 안온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전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한바퀴 돈 적이 있다.
잠실대교 북단에서 뚝섬을 거쳐 반포대교를 건너 강 남단을 돌아서 다시 잠실대교를 건너는 20km가 넘는 일주를 감행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먼 여정(?)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강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과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에 나도 모르게 무리를 했다.
걷거나 달리고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이들로 한강은 평온하면서도 건강함이 묻어났다.
그런데 성수대교남단 즈음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족히 일흔살은 돼보이는 영감님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백발을 휘날리며 나를 제치고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쓰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달리는 모습에 이끌려,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따라갔다.
그 동안 우리를 스쳐가던 많은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이 환호와 감탄을 연발하고 즐거움과 신기함에 가득찬 웃음으로 화답하는 것을 보면서 또 한번 여러 생각들이 나를 사로 잡았다.
'생물학적 수명과 사회적 연령간의 상관관계가 희박해지고 있는 오늘날,미리 자신의 삶을 나이라는 틀에 맞추는 것이 삶의 행복도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삶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그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에 인생은 더욱 즐거울 수 있는 것인가.'
마치 아침에 보는 한강이 저녁의 한강과 전혀 다르게 느껴지듯이,나이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다면 삶의 색깔은 판이하게 바뀔 것이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훨씬 즐거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위 창조적 파괴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많이 나간 것일까?
여하튼 나는 그 날의 짧은 여정에서 생긴 단상(斷想)이 한강을 볼 때마다 되새김질돼 나이가 들수록 경직되어가는 삶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되찾는 계기가 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한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