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청마 우체국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우체국 창문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이 8살 연하의 시조시인 정운(丁芸) 이영도에게 보낸 시 '행복'의 머리구절이다. 우리 문단에서 청마와 정운의 러브 스토리는 전설처럼 남아 있다. 청마는 정운을 향해 살아 생전에 무려 5천통의 편지를 썼다고 하는데 구절마다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물같이 까딱않는데/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바다를 배경으로 쓴 시 '그리움'은 좀체 움직이지 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그들의 사랑은 청마가 해방 후 통영여중 국어교사로 발령받으면서 비롯됐다. 정운은 해방되던 해 가을 이 학교의 가사교사로 부임해 있었는데 당시 시인은 남편과 사별한 뒤 딸 한명을 두고 있었다. 워낙 재색이 출중한데다 유교적 가풍에서 자라 행실이 조신했기에 누구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시인 박재삼은 "정운을 만날 때는 내 몸에서 먼지라도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러한 정운에게 청마라 해서 예외일 순 없었다. 청마는 교무실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정운의 얼굴을 대하건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매일 편지를 쓰고 시를 지었다. 그러나 정운의 마음속에는 청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날마다 배달되는 서신에 정운의 마음이 어느 정도 움직여갈 즈음 청마는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청마가 이영도에게 보내는 편지는 주로 우체국에서 썼다. 그녀에게서 받는 편지도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했다. 한국문인협회 통영지부가 유치환의 시에 등장하는 우체국의 이름을 '청마우체국'으로 바꿔 줄 것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정보통신부에 냈다고 한다. 이 곳 우체통 옆에는 '행복'의 시비가 세워져 있고 이 일대는 '청마거리'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청마의 이름이 그의 대표적 시 '깃발'에서처럼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