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21일 개봉 '하류인생'..법보다 주먹 '회색시대'

'하류인생'은 임권택 감독이 '장군의 아들 3' 이후 12년만에 내놓은 액션영화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가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오락물이었던 데 비해 '하류인생'은 액션을 '폭력의 시대'를 회고하기 위한 소도구로 사용했다. 액션은 강력하고 빠르게 전개되지만 시간적으로 길지 않다. 이 영화는 민초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195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의 격변기를 살아온 폭력배 태웅(조승우)의 젊은 시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이 시기에 조폭의 하수인에서 영화제작자로,다시 군납 건설업자로 변신한다. 그의 인생유전은 정치 깡패를 동원했던 자유당 정권,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폭력배 소탕령,비리로 얼룩졌던 군수산업 등 사회적 상황과 관련돼 있다. 태웅은 힘을 갖고 있는 실세들의 '사냥개'다. 그것은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폭력의 시대임을 뜻한다. 비슷한 시대를 다룬 '효자동 이발사'가 독재정권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데 비해 이 작품은 태웅의 삶을 통해 폭력의 시대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하류 인생이란 가난한 삶이 아니라 세태에 휩쓸려 방향을 상실한 삶을 의미한다. 태웅이 호의호식하는 건설업자로 영화가 끝나는 게 증거다. 그는 아내(김민선)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주무대인 1960년대 명동을 재현한 세트들은 화려하지만 음울한 회색빛으로 채색돼 있다. 태웅의 건조한 삶은 편집양식과 감정을 배제한 연출방식으로 더욱 부각된다. 태웅이 아내 혹은 자식들과 함께 있는 장면 뒤에는 늘 삭막하고 비정한 사업의 세계를 다룬 장면이 따라 나온다. 태웅이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행복감은 전혀 없다. 심지어 연애 장면조차 감정이 배제돼 있다. 때로는 건조한 분위기가 지나쳐 두 남녀가 포옹할 때 '썰렁한' 웃음을 낳을 정도다. '취화선'에서도 등장했던 이런 양식은 이야기의 진행에 속도감을 불어넣고 전후 장면들의 충돌로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행위와 감정을 따라가는 할리우드식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이 수용하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다. 21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