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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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엔 '라페스타'라는 패션 거리가 있다.
지난해 가을 조성됐는데 1년이 채 안된 지금 호수공원과 함께 일산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울긋불긋한 간판으로 도배돼 지저분한 다른 곳과 달리 간판을 깔끔하게 처리하고,동(棟)과 동 사이에 차없는 길을 만들어 거리 자체를 산책코스화한 덕이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앞 노유거리가 기존 점포의 볼썽사납던 간판을 과감하게 줄이고 바꿔 아름다운 패션가로 거듭난 곳이라면,라페스타는 처음부터 점포당 간판의 개수와 크기 형태를 규정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시도함으로써 다른 상가와의 차별화는 물론 지역 띄우기에도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간판은 이처럼 건물은 물론 거리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도시나 거리의 느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선진 각국에서 간판의 형태와 색상을 규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 파리시는 옥외광고물에 빨강 노랑 등의 원색을 못쓰게 하고,미국 보스턴시는 유흥지 외의 곳에서 반사가 심한 재료나 형광물질,동영상 사용을 제한한다.
일본만 해도 작고 아담한 간판이 대부분인데 우리는 어딜 가나 크고 번쩍대는 간판투성이다.
옥외광고물에 관한 법규가 있지만 '더 크게 더 많이' 달기 경쟁이 심화하면서 한 업소에 가로ㆍ세로 벽면간판 돌출간판 유리창간판 입간판까지 5개 이상 붙이는 수도 흔하다.
게다가 글씨까지 짙은 고딕체 일색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뒤늦게나마 간판 정비에 나선 가운데 정부가 판교와 화성 동탄 등 새로 건설될 신도시와 국민 임대주택단지에 '건축물 간판 경관제도'를 도입,간판을 함부로 달 수 없도록 한다는 소식이다.
업소당 개수도 줄이고 색깔 형태 글씨체도 조정한다는 얘기다.
한번 만들면 바꾸기 힘든 게 간판인 만큼 처음부터 제대로 달도록 지도하고 유도하면 지금처럼 건물과 도시가 온통 누더기같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 간판도 건물처럼 지역 이미지에 어울려야 한다.
무조건 작은 게 좋다거나 빨간색은 안된다는 식의 획일적 규제보다 지역과 거리에 맞는 색상과 형태 글씨체를 개발,보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