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혁신학교 들어가보니] 실미도부대 따로없네..4박5일 내내 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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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각자 일했던 전자레인지 생산라인에서 낭비요소를 20가지 찾아내고 10가지 요소에 대해선 개선방안을 마련해 새벽 4시까지 제출하십시요.오늘까지 한번이라도 80점 이상을 얻지 못한 학생은 퇴출된다는거 명심하시고..."
지난 12일 저녁 10시 경남 창원 LG전자 제1공장의 '혁신학교' 강의실.
교육생 복장의 이덕주 PC사업부장(부사장)이 굳은 얼굴로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탈락하면 인생 패배자로 인정한다고 선서까지 했는데..."
이 부사장은 "여태껏 관리.영업에 주로 근무해왔는데 생산현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찾아내라니 당황스럽다"며 서둘러 전자레인지 생산라인으로 향했다.
지난 10일 78기생으로 입교한 그는 첫째날과 둘째날 테스트에서 연속 불합격했다.
이날 80점을 넘지 못하면 혁신학교를 쫓겨날 판.
이틀간 두 시간밖에 잠을 못 잤지만 이날도 새벽 4시를 넘겨서야 답안을 제출할 수 있었다.
결과는 82점.
합격이었다.
LG혁신학교는 LG전자 창원공장의 성공체험을 사내에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
이제는 그룹의 '혁신 전도기관'역할을 하고 있다.
임원급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거쳐가야 하는 코스다.
무엇보다 이 학교는 강도 높은 교육과정으로 유명하다.
4박5일 교육기간을 통틀어 교육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안팎.
교육 일정표에 밤 10시 이후는 '무제한'을 뜻하는 화살표만 있을 뿐이다.
"목표를 완수했을 때가 교육이 끝나는 시간"(곽숙철 LG혁신교육센터 부장)이기 때문이다.
LG CNS 인프라솔루션사업부 김도현 상무는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이보다는 많이 잤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둘째날 교육과정을 보자.
오전 7시 구보를 마친 교육생들은 공장 입구에 두 줄로 도열한 뒤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90도 인사'와 함께 "혁신∼하겠습니다∼"라고 외친다.
화장실 청소를 마친 뒤 'T5S'로 불리는 공장의 정리·정돈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오전 10시부터 전자레인지 생산라인에 투입돼 밤 9시30분까지 숨 쉴틈 없는 조립 작업이 이어진다.
서기홍 정보통신사업본부 부사장은 "8초마다 새로운 전자레인지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타나는데 솔직히 사고라도 터져 라인이 멈추기만 바랐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교육은 라인이 멈춘 뒤부터.
녹초가 된 교육생들에게 학교측은 "공장의 정리·정돈과 관련해 20가지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어 내라"는 숙제를 내준다.
재료와 도구는 아무 것도 없다.
교육생들은 '맥가이버'처럼 공장 주변에서 재료와 도구를 찾아 아이디어를 물건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서 부사장이 낸 아이디어는 공정관리표의 이음새를 고무밴드로 연결해 필요할 때마다 손쉽게 끌어내리도록 한 것.
그는 "수시로 기록해야하는 공정관리표가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어 불편하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까 아이디어가 나오더라"며 웃었다.
혁신교육의 하이라이트는 4일차 오후 7시부터 시작되는 '32km 행군'.
걷는데서 끝나는게 아니라 다양한 과제도 풀어내야 한다.
78기에는 '주변 사물을 이용해 줄을 만든 뒤 단체 줄넘기 30∼50회를 달성하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박래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번의 휴식도 없이 달리다시피 걸었던 기억,잡초더미로 새끼를 꼬아 줄넘기를 해냈던 열정에 스스로 놀랐다"고 말했다.
다음달초 LG전자 태국법인장으로 부임하는 최철기 상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입교하기전 느꼈던 거부감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겨났다"며 "오늘의 경험을 태국 현장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