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김치 이야기 .. 형난옥 <현암사 대표>

ok@hyeonamsa 한 교포가 해 준 이야기다. 미국인이 한국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 다 좋아했지만 김치 냄새만은 참을 수 없어했다. 그 여자는 남자를 너무 사랑해 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김치쯤 안 먹더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눈치를 챈 남자는 여자에게 냉큼 각서를 쓰게 했다. 함께 사는 동안은 김치를 끊겠다고,여자는 웃으며 써주었고 둘은 결혼해 미국에서 살면서 첫아이를 가졌다. 그런데 얼마 안가 여자가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남자는 좋은 음식은 다 구해 바쳤지만 여자는 날이 갈수록 꼬장꼬장 마르기만 했다. 남편은 보다 못해,하늘에서 나는 것 말고 땅속에서 나는 것 아니면 다 찾아내 먹게 해 주겠다,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여자는,물론 하늘에서 나는 것도 땅속에서 나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자존심이 상해서 말할 수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도 못하고 당신 죽게 생겼다며 계속 말하라고 채근했다. 여자는 이에 못 이겨,물론 그걸 안 먹으면 나도 죽고 당신 아이도 죽는다,그래서 말하는 것이니 당신도 꼭 먹여준다고 각서 쓰라. 그러면 말하겠다고 했다. 서명을 받아낸 여자는 김치가 먹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것도 친정어머니가 담가준 김치가 먹고 싶다고. 남자는 한순간 어이없어 하며 펄쩍 뛰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장모한테 편지를 보냈다. 장모는 정성껏 김치를 담가 사위가 보내준 초청장과 항공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렇게 미국에 입성한 김치를 먹고 여자는 입맛을 회복해 남은 달을 무사히 보내고 예쁜 딸을 순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훗날 그 아이도 김치를 어머니 이상으로 좋아한다고 했다. 문화는 바로 이런 것이다. 강요할 수도 없고 하루 아침에 흉내낼 수도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한번 익숙해지면 사라진 줄 알았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다가 위기의 순간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그런 것이다. 문화는 지금 당장 얼마를 벌지 못하더라도 그 땅에서 호흡하며 생성한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중요하다. 세계화의 시대에 당당한 교류를 위해 우리의 유산을 제대로 기록하는 일도 어떤 일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