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앨런 그린스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경제 대통령,경제 마법사,시장 지배자 등 하나 같이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말해 주는 것들이다. '그린스펀 밴드왜건 효과'라는 용어 역시 여론을 환기시키는 그의 힘과 금융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린스펀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대체적인 의견은 경제논리 그 자체를 우선하면서 정치권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정치와의 관계에서 그의 소신과 고집은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도 대립각을 세우면서 원칙에서 물러서는 법이 없다. 지난 92년 재선에 나섰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당선을 낙관했다.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끈데다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외교·경제적인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정은 바뀌어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났고 실업률은 높아만 갔다. 마침내 부시 전 대통령은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량을 확대해 줄 것을 그린스펀 의장에게 건의했지만 단호히 거부당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결국 부시는 낙선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도 금리인하 및 통화량 확대에 대한 끈질긴 요구를 거절하는 뚝심을 보였는가 하면,성추문 스캔들을 모면하려는 클린턴의 선심경제정책을 거부했다. 그린스펀은 임기에 있어서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 87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처음 임명된 그린스펀은 그후 부시,클린턴,아들 부시 등 4명의 대통령을 거치고 있는데 그가 이번 5번째 연임(20년)을 마친다면 사상 최장수 의장이 된다. 검고 굵은 테 안경 너머의 무표정한 78세 노인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과거 재정적자를 소홀히 한 감세정책이라든지,IT붐이 한창일 때 금리인상을 하지 않아 미국경제에 거품이 일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 금리인상 시점을 놓고 그린스펀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의 재선가도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그린스펀이 올 가을 아들 부시의 재선에는 또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지 벌써부터 관심이 크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