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인터뷰) 박찬욱 <감독>

"영화 인생의 정점에 선 듯한 기분입니다. 염세주의자로서 한마디 한다면 이제 내 인생에는 내리막길만 남아 있는 게 아닐런지요." 제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차지한 박찬욱 감독(41)은 이처럼 농담조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01년 '공동경비구역 JSA'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금곰상을 예견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던 그는 이번에도 수상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드보이'가 경쟁부문에 초청됐을 때만 해도 칸에서 상을 받을 만큼 전형적인 예술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특이하게 여길 것이라고 짐작했을 정도지요." 그는 수상 이유를 "서양에서 자주 다뤄온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었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이번에 상을 받은 덕에 앞으로 만들 영화가 흥행이 잘 안되더라도 (투자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복수극을 다룬 '올드보이'는 판이한 성격의 두 남자의 대결,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대립 등 여러 요소들을 충돌시켜 현지 평론가들로부터 그리스 신화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들이 잘 섞여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JSA'를 촬영하기 전 단편영화 '심판'을 만들었을 당시가 영화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된다고 회고했다. 그 무렵 배우들의 연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제가 두 번씩 보는 영화는 배우가 연기를 잘한 작품입니다. 감독이 생각하는 연기는 진부할 때가 많아요. 위대한 배우들은 그런 상투성을 한순간에 뛰어넘지요. 최민식이 그런 배우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 촬영장에서 일할 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집니다." 그는 차기작으로 여성판 복수극 '친절한 금자씨'를 준비 중이다. 30대 중반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어젯밤에도 세 신이나 썼다고 했다. 서강대 철학과 출신인 박 감독은 지난 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데뷔한 뒤 '공동경비구역 JSA''복수는 나의 것'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칸=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