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양심과 병역의무

양심이 무엇인지,어디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윤리학에서조차도 아직 합의된 정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성장하면서 양심을 의식하게 되고 양심이 행동을 판단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양심은 언제나 옳은 것인가. 양심은 환경이나 교육,가치기준 등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오류도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종종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선고가 내려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논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들어 반색하고 있으나,반대론자들은 헌법상의 '국방의 의무와 국민개병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법리상의 해석차이라기보다는 '양심'과 '현실'의 간극에서 벌어지는 논쟁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여호아의 증인' 신자들로부터 비롯됐다. 일부 신자들이 입영을 거부하고 대신 교도소를 택한 것이다. 내연하던 이 문제는 2001년 불교신자이면서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가 병역거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범종교적 문제로 비화됐고,몇몇 진보성향의 변호사들이 무료변론에 나서면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는 80여개 국가 중 40여개국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해도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헌법에 명기돼 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대체복무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대체복무기간은 현역복무기간보다 길며 소방 및 경찰업무,노인요양소 장애인시설 등지에서 공익적인 일을 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우리 현실은 이들 국가와는 판이하다. 냉전상황 아래에서 나라를 지킬 젊은이들이 필요하다. 양심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이번 법원판결이 행여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도 존중해야겠지만 법질서 유지와 국가안보는 분명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할 것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