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중구난방' 세금 발언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지난 2월20일 취임 후 첫 경제장관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장관들에게 당부한 사항은 "부처간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다른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자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서인지,이 부총리의 경제팀 장악능력이 약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그런 '당부'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 내에서 합의되지 않은 정책들이 중구난방식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세금 문제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25일 냉동공조업계 대표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세금 문제를 쉽게 건드릴 수는 없지만 에어컨 특별소비세 폐지 문제를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의 건의를 외면할 수 없는 산업 주무장관으로서의 의례적인 언급일 수도 있지만 세제 소관부처인 재경부측은 "에어컨 특소세 폐지를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산자부는 잠시 뒤 보도참고 자료를 냈다. 요지는 지난 3월23일 에어컨 특소세를 16%에서 11.2%로 내린 만큼 당장 세율을 더 인하하거나 폐지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진의가 와전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이미 시장의 '성급한' 기대를 부추긴 뒤였다. 국민들이 세금 때문에 헷갈린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산자부는 지난 4월초 국제 유가가 배럴당 35달러선에 가까워지자 유류 제품에 붙는 내국세(교통세·특소세)를 조기 인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경부는 그때도 "인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다. 세금은 정부가 쉽게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그것을 논해서는 안된다. 파장이 큰 만큼 부처간 신중한 협의를 통해 국민들에게 정책방향이 제대로 전달돼야 할 것이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