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혁신포럼] 한국기업의 혁신 현주소 (下) : 돌파구는 있다

글로벌혁신포럼을 통해 한국경제신문과 모니터그룹이 내린 진단은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의 성공 밑바탕이었던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 익혀온 전략을 버리기도 어렵거니와 한단계 도약해 혁신리더(innovation leader)가 되는 것도 지난한 과제다. '혁신 프리미엄(The Innovation premium)'이란 책의 저자로 유명하고 혁신에 관한한 대표적인 구루(guru)로 꼽히는 로널드 조내시 모니터그룹 IMI대표는 이 과제를 뚫을 돌파구는 얼마든지 있다고 조언한다. 지난 24일 열린 글로벌혁신포럼 직후 조내시 대표를 만나 한국 기업의 혁신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조내시 대표가 혁신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금부터 20여년 전. 미국 가전업체 RCA의 연구소가 GE에 단돈 1달러에 팔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였다. RCA는 세계 최초로 컬러TV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시킨 회사였다. GE는 RCA의 다른 사업부문은 거액을 주고 인수했지만 노벨상수상자까지 소속된 이 연구소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당시 컨설턴트로 일하던 조내시 대표는 이 '어이없는' 사건을 지켜보며 마음에 깊이 새긴 교훈이 있었다. '혁신을 통해 관리되지 않는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지금의 한국도 그리 안심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한국의 CEO들이 혁신리더십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막대한 투자를 통해 개발한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상용화되지 못하고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혁신리더십을 갖출 것인가. 조내시 대표는 '3P(platform, pipeline, partnering) 경영'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창출하고 이 가운데 가치있는 아이디어를 선별해 제품ㆍ서비스로 상용화시키는 혁신 프로세스를 체계화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3P경영을 통해 혁신기업으로 도약하면 주주에게는 가장 투자하고 싶은 회사, 소비자에게는 가장 사고 싶은 브랜드, 직원들에게는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다른 기업에는 가장 제휴를 맺고 싶은 회사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혁신 프리미엄을 얻기 위해 먼저 서둘러야 할 과제는 플랫폼(platform: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어떤 부문에 중점을 둬 혁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혁신의 주제라고도 볼 수 있다. 소니가 혁신과정에서 염두에 뒀던 커다란 주제는 '소형화'였으며 모토로라는 '커뮤니케이션', 듀폰은 '신축성', 유니레버는 '노화방지', 캐논은 '디지털이미징'이었다. 유니레버는 노화방지라는 기치 아래 주름개선, 스킨케어, 스킨컬러, 레티놀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으며 캐논은 디지털이미징을 주제로 카메라뿐 아니라 의료분야에도 진출했다. 플랫폼은 혁신에 투자할 때 우선순위를 매기는 기준으로 작용해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 플랫폼은 전략, 핵심역량, 시장상황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조내시 대표는 "개별 핵심역량은 쉽게 모방이 가능하지만 핵심역량들의 집합체인 플랫폼은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파이프라인(pipeline)을 정비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것도 혁신기업이 되기 위한 과제다. 파이프라인은 '플랫폼을 통해 걸러진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평가·선정하고 프로젝트로 가시화시키느냐'에 관한 것이다. '혁신 아이디어의 흐름'을 체계화시킨 개념이다. 한국 기업이 가장 취약한 부문이기도 하다. 조내시 대표는 "취약한 파이프라인은 한국이 재빠른 추격자 전략을 고수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효율적인 파이프라인 구축을 위해선 여러 부서가 함께 참여하는 '협업팀(cross functional team)' 구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조내시 대표는 혁신리더십의 요건으로 파트너링(partneringㆍ제휴)을 특히 강조했다. 파트너링은 플랫폼, 파이프라인을 형성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혁신기업은 조직 내에서 찾기 어려운 통찰력을 공급업체, 유통업체, 고객 등 외부에서 찾는다. 조내시 대표는 "한국의 기업들이 혁신적으로 변하려면 제휴를 잘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략방향에 맞게 제휴사를 선택하고 제휴에 대한 문화적인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