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금 관리부실] 채권 헐값 매각…외국社 '눈먼 돈'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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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발표한 공적자금 관리 감사결과는 관련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수십억ㆍ수백억원의 부실 채권이 마땅한 처리시스템을 갖추지 못한채 외국계 투자기관의 손에 의해 주물러졌고, 국내 공적자금 집행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에게 1조원 가까운 부담을 또 다시 안겨준 것.
담보채권을 무담보채권으로 분류해 헐값에 팔 때도, 외국계 자문사에 수백억원의 수수료를 덤으로 줄 때도 이를 걸러낼 수 있는 어떤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외국계 자문사와 투자자들이었다.
외환위기때도 거의 손해를 보지 않고 채권을 회수해 간 이들은 거액의 자문사 용역비와 잘못 분류된 알짜 채권을 매입해 고가에 매각함으로써 수백억원씩 챙겨간 사실이 확인된 것.
◆ 약점 파고든 외국계 회사들
감사원은 공적자금 관리기관들에 대한 감사를 통해 그동안 유용ㆍ횡령ㆍ과다집행 등 세간에 나돌았던 의혹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부실채권 처리 업무와 관련해 외국계 A사가 과다한 특혜를 누렸다는 의혹, G투자기관이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는 설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이들은 풍부한 경험으로 국내 부실채권시장의 무지를 파고 들었다.
이들은 해외 금융시장과의 네트워크를 무기로 부실채권 처리를 맡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와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선임하는 재무자문사 용역을 대부분 수주, 구조조정시장에서 독ㆍ과점 이익을 마음껏 누렸다.
또 국내 기관들의 실사기법 미비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대한주택보증이 보증을 선 채권과 진로 채권 등 우량채권을 헐값에 집중 매입, 채무회사로부터 채권가액의 1백% 가까이 변제받는 등 수십배의 이익을 챙긴 사례가 적지 않았다.
◆ '매각'은 있지만 '관리'는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쏟아져 나온 부실채권 처리가 화급했던 1999년부터 2001년은 외국계 투자회사나 자문회사들이 이름만으로도 '행세'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누구도 이들의 행태를 검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공적자금 관리체계의 총체적 부실에 대해 "국제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자본에 휘둘릴 수 밖에 없었다"고 원인을 지적했다.
공적자금 투입과 회수 주체인 KAMCO가 옛 성업공사 직원들과 은행 퇴직 직원들로 구성돼 부실채권 관리의 경험이 충분치 않았다는게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게다가 이들 공적자금 집행기관의 임직원들이 외국계 자문사를 선임하고 부실채권 처리를 맡기는 과정에서 '검은 거래'가 적지 않았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외국계 재무자문사들과 지나친 손실보전약정을 한 것이나 수의계약을 한 사례 등은 리베이트 거래에 대한 의혹을 주기에 충분하다"며 "일부 KAMCO 직원들이 외국계 자문사나 투자회사로 옮겨간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자금으로 '돈잔치'한 KAMCO
더욱이 KAMCO는 부실채권정리기금에서 2천3백30억원을 주고 사온 5조1천7백23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일반회계를 이용, 8백63억원만 주고 매입하는 방식으로 회계처리해 수천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에 따라 국민부담으로 돌아가는 부실채권 기금은 1천4백69억원의 손해를 본 반면 이 채권 가운데 일부를 4천억원에 매각한 KAMCO는 수천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그 결과 KAMCO는 2000년 이후 계속 이익을 낸 것처럼 꾸며왔고 주주들에게 배당까지 해왔으며 정부의 기관평가에서도 우수한 평점을 받아 왔다.
정종호ㆍ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