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소음이 넘치는 사회 ‥ 형난옥 <현암사 대표>

온 사회가 소음으로 들끓는다. S 대형마트가 문을 연 날, 주변 대형마트인 월마트나 백화점 매상을 몇 배 앞질렀다는 소문이 돌아 그 안에 있는 책방을 둘러보러 갔다. "coffee & snack이 매장 가까운 곳 어디나 있어서 쉼터가 되고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는 선전 문구대로 과연 널찍한 매장에 마실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곳은 널려 있었지만 문화가 살아 숨쉰다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옷가지나 생활용품을 파는 매장이 옹기종기 모여 시선을 어지럽히는 그곳에서 정작 문화를 쉽게 향유할 수 있는 건 책뿐이었는데 책을 사려면 다른 매장에 눈을 빼앗겨 정작 목적물에 관심을 쏟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유아들을 위해 그림책과 놀잇감을 함께 둔 곳이 있지만 그냥 책이 있는 놀이터였다. 잘 정돈된 집안의 공부방처럼 '정온한' 서점을 만들어간다면 많은 시민들한테 더욱 사랑을 받을 것이며 도서관운동을 덜 하더라도 사회 곳곳에 도서관 수개를 더 갖는 셈이 될 터인데 이렇게 서점마저 시끌벅적해야 하는지. 책 사러 가는 사람은 책을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책 앞뒤를 살펴보는 건 기본이고 몇 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줄은 읽는다. 값을 물든 안 물든 시간을 써서 책을 보면 본 것만큼 덕이 되어 우리 국민 전체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는 없는지. 우리는 사회 전반의 정온한 분위기 확보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보라, 어디를 가든 운동경기 중계 때문에 그것 외에는 시간을 쓰기가 거북하다. 고속버스도 그렇고 미장원 제과점 식당 등 접객업소도 웬만한 곳이면 주인의 기호대로 틀어둔 TV 때문에 소란함을 참느라 무척 괴롭다. 그 공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TV를 보는 외에도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할일이 많다. 그런데 대형 TV가 시끄럽게 방영되고 있으니 조용한 곳을 찾아나서 보면 화장실 외에는 거의 없다. 기다리는 동안 들고 간 책을 읽거나 나름대로 시간을 활용하고 싶어도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항상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정온한 분위기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가난하더라도 자신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못하더라도 조용한 공간 그대로만 두어 준다면 그냥 자기 공간처럼 쓸 것이 아닌가. 이제 어디에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온한 환경을 기대한다. 어떤 공간이든 어떤 재화든 다목적용일 수 있도록 설계하는 마음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