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막걸리

막걸리(탁주)는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오랜 전통주다. 배꽃 필 때 필요한 누룩을 만든다 해서 이화주로 불렸다고 하는데 77가지 술제조법을 기록한 '양주방'(1837년)엔 '혼돈주'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발효된 뒤 막 거른다고 해서 막걸리가 됐다지만 좋은 막걸리는 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떫은맛에 감칠맛과 시원한 맛까지 더해진다. 알코올도수가 낮은데다 아미노산 비타민B 등이 들어 있어 배부르고 피로를 풀어준다. 때문에 농사 짓고 막일 할 때면 누구나 새참과 함께 먹고 힘을 냈다. 특히 60∼70년대 산업개발시대엔 너나 할 것 없이 막걸리 한사발로 시름과 배고픔을 달랬다. 64년 쌀막걸리 제조가 금지돼 죄다 밀막걸리였는데도 60년대말 막걸리 소비량은 전체 술 소비의 80%에 달했다. 70년대 중반까지 70%였던 막걸리 소비는 그러나 유해막걸리 유통에 맥주와 소주 애호가가 생기면서 줄어들었다. 게다가 82년 맥주와 소주에 대응한다고 6도에서 8도로 올리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지하철공사장 새참으로 주던 막걸리의 도수가 높아져 인부들이 취하자 지급을 금지한 통에 소비가 급감한 것.85년 다시 6도로 내렸지만 한번 꺾인 수요는 살아나지 못했고,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맥주에 추월당했다. 91년 위스키시장 개방과 함께 주세율을 10%에서 5%로 내렸지만 출고량은 더 줄었다. 지금은 논두렁에서도 막걸리 대신 커피와 맥주를 마신다지만 그래도 많은 이에게 막걸리는 추억이다.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젓가락 장단,옷에 엎질러진 냄새까지.안주라야 도토리묵과 파전,때론 김치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꿈과 낭만을 잊지 못한다. '2004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가 29∼30일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 앞 미관광장에서 열렸다. 찹쌀,잣,인삼,더덕,천연암반수,검은콩 막걸리까지 온갖 종류가 모인 광장에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얘기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한사발 권했다. 텁텁하고 정겨운 막걸리의 멋을 느끼게 한 행사였던 셈.하지만 그늘도 앉을 곳도 마련하지 않은 채 막걸리 판매에만 급급한 듯한 대목은 아쉽고 안타까웠다. 기왕 여는 축제라면 보다 철저하게 준비하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