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술수준 .. 민계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minks@hhi.co.kr 우리나라는 참으로 묘한 나라다. 국토면적으로 볼 때는 소국이지만 남북한 인구를 합치면 작은 나라가 아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교역량이 세계 10위권을 넘는 경제대국이다.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백대기업에서 우리 기업은 1995년부터 9년간 평균 12개가 선정돼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에 이어 평균 6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기술의 도입과 모방을 통한 산업화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둬 전쟁의 폐허속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세계는 점차 하나의 '지구촌'을 향해 국제화,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과정에서 기술도입과 모방을 통한 팽창주의 성장전략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만의 고유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기술수준을 살펴보자. 1997년 발간된 일본 과학기술청의 '기술백서'를 보면 미국의 기술수준을 100으로 볼 때 일본이 약 73,한국은 겨우 7로 나와 있다. 이를 보고 처음엔 분개하게 되지만 설명을 읽으면 수긍하고 한숨이 나오게 된다. 미국 공학한림원(NAE)이 선정한 20세기 20대 공학적 성과를 보면 기술자의 한 사람으로서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뤄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2003년 기술수준 평가결과 보고'에 따르면 세계 공통핵심기술 99개 분야에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인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핵심기술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최고 수준의 핵심기술 수는 미국 88개,일본 16개,유럽이 16개를 보유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단 한건도 없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우리의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우리는 기술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산업계와 정부,사회 및 교육계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범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인은 각종 국내외 학술활동과 산학협력을 통해 창의적인 연구를 활발히 하고 우수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우리 과학기술을 진흥해야 한다. 이런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제도개혁,연구 활동,인력양성이 유기적·체계적으로 이뤄질 때 우리나라의 경제는 경이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