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미국 대통령과 기업

미국 대통령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회동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2002년 8월의 일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목장 근처인 텍사스주 웨이코라는 작은 도시에서 '경제정상회의'를 개최했고 그 자리에 경제전문가,근로자,시민과 함께 CEO 몇 명을 초대했다. 경기회복을 위해 분위기를 띄우는 전시 행정적인 회의였지만 그렇다고 기업 규모가 큰 순서로 10명이나 20명의 총수가 일제히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분야별 대표 몇 명만 참석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찰스 슈왑 증권사의 찰스 슈왑 회장은 배당소득세 철폐를 강력히 주장했다. 증권업계가 바라던 사항이었다. 슈왑 회장은 증권업계가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약속하지 않고 대신 정부가 증권업계를 위해 해줬으면 하는 건의사항을 전달한 것이다. 슈왑 회장의 건의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음해 평균 38.5%에 달했던 배당소득세율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청와대 회동 장면을 보면서 가장 먼저 웨이코 정상회의가 생각난 것은 취지와 형식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기업 총수를 한 자리에 불러 모은 적이 거의 없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업계의 애로 사항을 들어보거나 웨이코 정상회의처럼 특별한 행사에 몇 명을 초대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자리에 참석한 총수들도 청와대 회동처럼 투자확대나 고용확대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모르고 있는 기업의 현실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자리로 활용하는게 보통이다. 실제 기업투자는 한 해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대폭 늘릴수 있을 만큼 쉽게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 주주와 종업원들을 위해 이익을 많이 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기업인이 굳이 행정부 관리들에게 어떤 분야에 어느 정도 투자하겠다고 밝힐 필요가 없다. 그런 약속을 기대하는 행정부 관리들도 없다. 한국 재벌의 투자확대는 경기회복을 바라는 국민들에겐 좋은 소식이지만 발표 형식은 오래된 영화의 옛날 장면처럼 어색해 보였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