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스케치] '떳다방' 최실장의 하루

"떴다방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이동식 중개업자란 말도 있는데…."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쌍용플래티넘밸류 모델하우스 앞에서 만난 최명태씨(가명·33)의 첫 마디다. 흔히들 '떴다방'이라고 부르는 이동식 중개업자인 최씨가 건넨 명함에는 '강남쌍용플래티넘밸류 분양권전문 실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프리미엄(웃돈)이 붙을 만한 곳이면 반드시 단지 이름을 따 명함을 새로 판다고 했다. 또 이동식 중개업자들은 모두 '실장'으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깔끔한 양복차림에 머리를 말끔히 빗어넘긴 모습.그는 "고객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선 외모에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가 '떴다방' 일을 시작한 건 약 5년 전.대학 졸업 후 잠시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곧바로 부동산업계에 입문했다. 월수입을 물어봤다. 한 달에 수백만원을 쉽게 벌기도 했지만 요즘은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끼리 수수료 경쟁까지 붙다보니 건당 10만∼20만원짜리 거래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최씨와 대화를 나누는 중 쌍용건설측 경비직원들과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쌍용측에서 누군가 "밀어버려"라고 외치자 직원들이 중개업자들을 도로 건너편으로 내몰았다. 최씨는 "건설업체와 중개업자간 감정싸움"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건설사들이 계약 당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중개업자들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좀 섭섭하다"고 말했다. 이날 최씨의 휴대폰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다른 중개업자와 고객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딱지요? 알았어요. 박 실장한테 가서 거둬오라고 시킬게요"라는 대화도 오갔다. 딱지는 당첨된 청약서를 말하는 은어.이동식 중개업자들은 보통 2∼4명이 팀을 이뤄 움직인다. 최씨에게 필요한 장비는 휴대폰과 동 호수 등이 나와있는 전단지 한 장뿐이다. 휴대폰 배터리를 두 개씩 들고 다닌다. 현장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름아닌 '인사'.다른 중개업자에게 일일이 아는 척을 한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다 아는 사이다. 웃돈 정보를 공유하고 가끔 '물건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찍는다'는 말은 다른 중개업자에게 웃돈을 주고 딱지를 사는 것.이렇게 산 딱지를 더 비싼 값으로 다른 중개업자나 고객에게 넘긴다. 그래서 '폭탄돌리기'라는 말도 나왔다. 최씨는 딱지를 수십 개씩 찍는 큰손 찍새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이동식 중개업자들만이 사용하는 은어는 또 있다. '명함아줌마'는 중개업자들의 명함을 고객에게 한꺼번에 뿌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카드'는 공급계약서(분양권)를 말하는 그들만의 언어다. 딱지 거래가 불법이다보니 국세청 직원을 제일 싫어한다. 최씨는 이날 2백만원의 웃돈이 붙은 오피스텔 거래 1건만을 성사시키는 데 그쳤다. 이처럼 '장사'가 안되다보니 요즘 들어선 서산 전주 등 전매 제한이 없는 지방으로 내려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요즘은 대형 평형 아니면 피(프리미엄의 준말)가 붙지도 않아요. 또 오늘같이 계약 마지막날엔 항상 피가 떨어지죠.정말 죽을 맛이에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