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동전

어느 정도 나이든 어른이면 동전 한닢에 대한 한두 가지의 추억은 간직하고 있다. 운동회나 소풍가던 날 어머니가 손에 꼬옥 쥐어주던 동전으로 맘껏 군것질을 할 수 있었고 벼렀던 놀이기구도 살 수 있었다. 차마 아까워 쓰지 못하던 동전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온종일 다녔던 길을 되짚어 찾아 헤매곤 했다. 그 때의 절망감이란 무엇과도 비길 바가 아니었다. 이토록 소중했던 동전이 이제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몇몇 철없는 아이들의 분별없는 행동이긴 하지만 호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싫어 동전을 팽개치고,물건을 사고 받은 거스름돈을 길바닥에 버리더라는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다. 용돈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동전의 효용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것 같다. 미국의 학교에서 조지 워싱턴 등 위인들이 새겨져 있는 동전을 교육용으로 활용하면서 아울러 돈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요즘 "동전은 돈이 아니냐"며 항의하는 네티즌들로 인터넷 게시판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발단은 한 음료회사 직원이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대한민국에서 동전은 더 이상 통화가 아닌가요"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동전을 바꿔주는 은행이 없어 가마니에 동전을 넣어 창고에 쌓아두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마디로 애물단지라는 얘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저축이 미덕이라며 한푼 두푼 모아둔 돼지저금통을 들고 은행에 가봐야 헛걸음질치기 일쑤다. 동전별로 분류해서 총액을 계산한 뒤 창구에 내밀어야 한다. 그것도 한가한 시간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동전을 하찮게 여기는 풍조는 담뱃값에 영향을 미쳤다. 엊그제부터 신제품 '제스트'가격이 2천3백원에서 2천원으로 내려 끽연자들은 좋아할 것이나,그 속사정은 잔돈을 챙기는 일이 번거롭다는 소비자들의 불만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폐의 보조화폐로 사용되는 동전은 우리 경제생활에서 필수적이다. 연간 동전 제조비가 5백억원이 넘는 현실에서 동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