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제사를 권장한 관중의 지혜..이봉구 <논설위원>

수많은 나라들이 패권을 다투던 중국 춘추시대,최초로 패자의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제나라 왕 환공이다. 그가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에 밝은 명재상 관중이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는 국부와 군사력을 키워낸 덕분이다. 포숙과의 깊은 우정으로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만든 바로 그 사람이다. 하루는 국고가 크게 부족해진 것을 알게 된 환공이 관중을 불러 상의했다. "인두세를 부과하면 어떨까요." "안됩니다." "왜 안되는가." "백성들이 가족 숫자를 속일 겁니다." "그럼 가축에 세금을 매깁시다." "가축을 잡아먹고 말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죽은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시지요 " 환공은 화를 냈다. "아니,산 사람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하는데 죽은 사람에게서 어떻게 세금을 걷겠다는 말인가." "제사를 지내도록 장려하면 됩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곡식과 과일 생선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고 당연히 값도 오르게 됩니다. 그 때 이들 품목에 과세를 하면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백성들도 수입이 늘어 불평이 없을 것입니다." 환공이 관중의 건의를 그대로 시행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국고가 다시 풍성해졌다. 생산과 소비가 늘면서 백성들의 생활도 나아졌다.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시장참여자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 결과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경제가 잘 굴러가려면 시장참여자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주축이 기업이라고 한다면 가능한 한 기업이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주면서 제 발로 새로운 사업이나 투자를 찾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장기불황에다 실업문제,고유가,중국쇼크까지 겹친 상황임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 기업의욕을 부추기기는커녕 개혁이란 이름아래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만 같아 걱정이 앞선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계속 유지키로 한 것은 물론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을 부활하고 대기업 계열 금융사의 의결권을 축소키로 하는 등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노동계도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근로조건 후퇴없는 주5일근무제,노조의 경영참여 등 무리한 요구로 가뜩이나 힘든 기업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사회공헌기금을 강제적으로 징수하자는 주장까지 내놓는 판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반기업정서가 확산돼가는 것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기업들이 과거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끈 공로는 외면한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온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부를 창출해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데도 칭찬을 받기는 고사하고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고 온갖 부담만 가중되는 상황이라면 기업의욕이 살아나고 투자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개혁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물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부터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용도 불분명한 개혁 논의는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기업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시장이 환영하지 않는 개혁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인두세 징수 대신 제사를 장려한 관중의 시장친화적 정책 아이디어가 참으로 아쉬운 때다.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