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일조ㆍ조망권 분쟁'] (1) 일조ㆍ조망권 다툼의 현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동 S아파트 주민 일부는 최근 일조ㆍ조망권 감정 전문업체에 '시뮬레이션'(가상평가)을 의뢰해 놨다. 아파트 단지 앞에 21~22층 규모로 재건축되고 있는 A아파트가 완공되면 일조ㆍ조망권이 크게 침해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3동에 사는 60가구는 '일조ㆍ조망권을 침해받게 된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면 A아파트 9백26세대를 상대로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낼 계획이다. 한 주민은 "A아파트가 재건축된다는 발표 이후 주변의 같은 평형 아파트에 비해 시세가 1천만~2천만원 가량 떨어지는 등 금전적 손해를 보고 있다"며 "탁 트여 있던 조망도 사라져 정서적인 피해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일조권(日照權)과 조망권(眺望權)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과밀 개발로 인해 고층 건물이 크게 늘어나고 일조권과 조망권에 대한 권리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조권 침해를 보상받기 위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1994년 소송이 처음 제기된 이후 일조ㆍ조망권과 관련된 분쟁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일조ㆍ조망권 문제에 정통한 이승태 변호사(법률사무소 서우)는 "사안의 성격상 최종판결전 당사자 합의로 끝나는 경우들이 많다"면서 "소송이 제기된 전체 분쟁건수를 보면 지금까지 1천건을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 일조ㆍ조망에 대한 권리의식 급신장 =일조권 다툼은 지난 5월 초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진달래아파트 주민들이 인근의 주공1차아파트 재건축조합으로부터 일조권과 조망권, 사생활권 등을 침해받는 데 따른 배상금으로 가구당 평균 3천만원씩 총 1백8억원을 받기로 합의한 뒤 더욱 급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원 중재로 이뤄진 진달래아파트 사례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일조권'이 법전(法典) 속의 권리가 아니라 실제 보장받을 수 있는 구체화된 권리라는 점을 인식시켜준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뉴타운 사업 등에 따라 대규모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어 일조권 분쟁이 급증할 개연성이 높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는 주민조합이나 시행사ㆍ시공사 가운데는 일조권 분쟁에 대비해 피해 배상금을 미리 재건축 사업비 안에 포함시켜 놓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 이웃 사촌이 '견원지간' 될수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현대빌라 주민과 인근 현대아파트 주민들은 현대빌라 재건축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의 골'이 깊어져 원상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10년 전 현대빌라 주민들의 민원 제기로 아파트 층수를 계획보다 낮췄던 현대아파트 주민들이 이번에는 현대빌라 재건축이 "일조권과 사생활권 등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주민들간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다. 현재 분위기로는 법정 다툼이 불가피하다는게 주민들의 얘기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인터넷 등 이런저런 경로로 접수되는 건축 민원의 50∼60%는 넓은 의미에서 일조ㆍ조망권 다툼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주택이 밀집돼 있는 영등포구와 구로구, 관악구 등에서도 최근 재개발ㆍ재건축이 봇물을 이루면서 일조권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 ◆ 비상등 켜진 재건축ㆍ재개발사업 =일조ㆍ조망권 관련 피해 소송이 늘면서 시공사와 건설회사들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법원에서 일조권 피해 보상을 결정하는 사례가 늘면서 재건축 사업비 증가의 원인이 되는 데다 아예 공사 중단을 명령, 설계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경우 일조ㆍ조망권 분쟁에 대비하지 않고서는 재건축 사업을 계획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SK건설 관계자는 "공사 중단 가처분 신청부터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어 건설업계 전체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승태 변호사는 "환경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높아진 만큼 앞으로 일조권 다툼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서둘러 건축관련 법령과 분쟁조정절차 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언ㆍ강동균ㆍ이태명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