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발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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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의 화분에 물을 주며 내려다 보니/3층 병호네가 새로 산 차에 고사를 지내고 있었다/돗자리를 펴놓고/기관덮개 위에 좌정한 돼지머리에게/온 식구가 절했다/문득 마음이 푸근해졌다.'
시 첫머리의 노대(露臺)는 베란다로 불리는 아파트 발코니를 말한다.
거실 앞쪽 발코니는 이렇게 화분도 놓고,빨래도 널고,장독도 놔두고,바깥을 내다보며 담배도 피우고,외출하는 식구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 수도 있는 곳이다.
원래는 실외공간이지만 알루미늄 새시를 설치하고 유리를 달면 실내 공간이 된다.
분양 평수에 포함되지 않는 서비스 면적이어서일까.
앞쪽 발코니의 면적과 형태는 수시로 바뀌었다.
80년대 중반까지 거실 앞에만 달려있다가 점차 전면 전체로 늘어났고,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 7월엔 화단 설치를 조건으로 1.5m이던 폭이 2m로 넓어졌다.
2001년 9월엔 20년 이상 된 아파트 리모델링 시 복도식의 복도 일부를 뒷발코니로 전용하고,앞발코니 폭을 2.0m까지 확장하고 발코니가 없던 방쪽에도 설치할 수 있다는 발표도 나왔다.
그러더니 이번엔 다시 발코니를 줄인다고 한다.
오는 10월부터 짓는 아파트는 앞발코니 길이를 벽면의 3분의 2 이하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아파트 형태도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겉모양보다 더 중요한 건 튼튼한 구조와 쓸모있는 설계,안전한 마감재 사용에 따른 쾌적한 환경 조성이다.
80년대 중반에 지어진 목동아파트 30평형대도 화장실이 하나였을 만큼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아파트 실내가 달라진 건 외환위기 이후.분양시장이 얼어붙자 안목치수를 본격적으로 적용해 실내공간을 넓히고,주방을 바꾸는 등 변화를 꾀했다.
발코니를 줄이는 건 현재의 형태가 보기 싫은데다 불법개조를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베란다는 서비스 면적이다.
줄이면 소비자의 사용 공간은 좁아진다.
가뜩이나 마땅치 않은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장소도 문제다.
불법 개조가 근절되지 않는 건 발코니가 길어서가 아니라 애매한 단속기준 때문이다.
발코니 길이 제한보다 단지 설계나 층간 소음,유해마감재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 싶은 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일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