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불황기 상품명

불황기에는 제품의 이름이 길어진다고 한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다소라도 녹이려면 그럴듯한 추상적인 이름보다는 이름만 보고도 상품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브랜드전략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긴 이름은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데다 제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일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이점도 있다. 경기가 바닥이라고 하는 요즘 식품을 중심으로 긴 이름의 제품이 유행이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녹차를 넣어 만든 산뜻한 면과 시원한 동치미 육수가 그대로 들어 있는 풀무원 녹차 생냉면'으로 36자나 된다. '들기름을 섞어 바삭바삭 고소하게 튀겨낸 김''우리 아이 한입에 쏙∼돌돌이 김''조개와 멸치로 맛을 낸 된장' 등도 제품이라기 보다는 마치 광고문구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긴 제품명은 IMF 이후 혹독한 불경기 속에 등장해 히트를 쳤다. 당시만 해도 마케팅전문가들은 수많은 상품 중 한 상품에 눈길을 주는 시간이 0.6초라 해서 7자를 넘는 제품명을 터부시했다 그러나 10자가 넘는 제품들이 쏟아지면서 이러한 통념은 일거에 무너졌다. 일본에서도 불황이 한창이던 90년대 후반 외우기가 벅찰 정도의 긴 상품명이 나와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시기적으로 보면 우리 기업보다 한발 앞선 시장전략이었다. 기업은 제품을 만들지만 소비자가 사는 것은 브랜드라고 한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런 까닭에 기업들은 상품개발 못지않게 그 작명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종전과는 달리 그 상품이 갖는 여러 이미지를 담을 수 있고 재미있는 긴 이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국내외 히트상품의 이름에 대한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상품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어구사도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소리나는대로 작명을 하는가 하면 느낌표나 문장부호 등을 이용해 대화하는 듯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이대로 가다간 인터넷언어나 키보드자판의 부호를 사용하는 국적불명의 이름들도 다수 출현할 개연성이 높다. 경기변동에 따라 상품이름이 어떻게 변해갈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