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통지식이 웰빙 핵심코드..朴東炫 <베일러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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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원을 호가한다는 피카소의 그림 원가를 캔버스,물감 등 원재료값으로 따진다면 2만원도 비쌀 것이다.
나머지 수십억원은 지식재산권의 값이다.
지적활동의 성과에 큰 가치를 인정하고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보다 활발한 지적활동을 부추기는 제도가 지식재산권이다.
세계경제가 지식재산권 시대로 접어들면서 선진국은 제품개발이나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의 대가를 받고 후진국은 제품을 생산하는 국제적 분업구조로 바뀌고 있다.
한마디로 지식이 재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재산은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값을 매기기 어려운 지식재산권은 더욱 그렇다.
큰 돈이 될 물건들이 집안에 있는 지도 모르고 도둑질을 당하거나 너무도 헐값에 팔아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짓일 것이다.
원유가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매장돼 있는데 다른 나라 기업이 발굴해 가져가면서 우리나라에는 단순히 일종의 '지리적 수수료'로서 연간 몇백만달러만 손에 쥐어진다면 그 상황을 수긍할 수 있겠는가.
이런 비유에 딱 들어맞는 일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는 오래전부터 자연에 대해 '발견하고 소유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 결과 많은 아시아·아프리카의 국가들을 식민지화했으며 지금도 식민화 충동은 지속되고 있다.
과거의 식민화 대상이 '땅'이었다면 이제는 '지식'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인도사람들은 오랫동안 님(neem)이라는 토착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새싹을 먹으며 새해를 시작하고 항박테리아 성질을 이용해 치약으로 쓰며 신격화해 섬김의 대상으로 삼는 부족도 있다.
그러나 서구 기업들은 님나무의 약리적 특성에 주목해 그 추출물로부터 무공해 농약을 만들었다.
앞다퉈 님나무와 관련된 특허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님나무에 관련된 지식재산권은 모두 서구 자본에 넘어갔다.
지금 서구의 거대 자본들이 눈독들이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의 자연자원이다.
과거의 관심이 '검은' 황금인 원유를 찾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푸른'원유,즉 새로운 의약품·식품·화장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제3세계 생물자원과 이와 관련된 전통 지식이다. 청국장을 우리나라 고유식품으로 알고 있는가? 미국의 웰빙숍(well-being shop)에 가면 인도네시아 청국장이 다이어트식품으로 비싼 값에 팔린다.
그것을 발견해 다이어트 기능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 웰빙식품으로 개발한 주체는 미국기업이다.
이런 것들이 생물해적질(biopiracy)이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기업들에는 히트 상품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찾는 최초의, 그리고 결정적 단서는 당연히 전통으로 전해내려온 민중의 지식과 생활문화,민간요법들이다.
서구의 제약기업들이 한국보다 더 동양의학 연구에 투자하는 이유다.
아마존 지역의 민간요법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방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나라는 식약동원(食藥同源,약과 음식은 근본이 같다)에 기저를 둔 한의학적 전통 때문에 많은 민간요법과 독특한 생활문화,전통지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같은 전통지식들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보호 발전시키는 본격적 노력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다.
황토 화장품이 고가에 팔리고 생식도 각광받지만 체계적으로 전통지식을 살려내고 지식재산권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은 미흡하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전통지식에 뿌리를 둔 상품은 비싼 웰빙상품으로 구분된다.
세계적으로 웰빙산업을 자동차 컴퓨터에 이어 역사상 세번째로 도래하는 1천조원 규모의 신산업으로 꼽는다.
초국적기업들이 생활문화로서 정착된 다른 나라의 전통지식,민간요법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전통지식의 보호와 이용은 기업들에는 새로운 사업 기회이자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에 목마른 정부의 도전 과제다.
우리 고유의 전통 지식 발굴과 보호에 노력하고 동시에 다른 나라 전통지식의 개발에도 적극 참여할 일이다.
우리집 앞마당에 푸른 원유가 묻혀 있다.
david@vail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