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약용식물 .. 정명희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

정명희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다는 것은 우리 나라의 특성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우리처럼 다양한 약용식물이 자라나는 나라도 흔치 않은 것 같다. 옛날,합성의약품이 개발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병은 자연치유와 약용식물을 사용해 치료했다. 따라서 효능이 있는 약초를 잘 찾아내 쓰임새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맥을 짚고,침을 놓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찾아 나서려면 목욕재계를 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주변의 약초들을 잘 관찰하면 특히 재미 있는 것은 식물이 모양새에 따라 인간의 질환치료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호두가 인간에게 좋은 것은 그 속모양이 인간의 뇌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두 알을 손에 넣고 굴리는 것이 혈액순환과 뇌기능의 활성화에 좋다는 것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인체를 쏙 빼닮은 인삼은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마지막 신비를 풀지 못하고 있듯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인삼의 어떤 성분이 어느 특정 질환에 좋은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삼의 약효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은행나무는 또 어떠한가? 열매는 많은 이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높은 영양가를 자랑하는 먹을거리가 되고,그 잎은 말초혈관 확장제로 손발 저림과 이명 증상 치료에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은행나무는 암수 딴 그루로,함께 서 있을 때만 암나무에 열매를 맺는 아주 특이한 나무다. 게다가 한 20년 가까이 키워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참으로 인간의 삶과 유사하지 않은가? 신문에서 백두산 트레킹 상품에 대한 광고를 보았다. 1년의 대부분을 머리에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백두산이 6~9월 넉 달 동안만은 1천8백여종의 야생화들이 아우성치듯 터져나와 꽃의 축제장으로 바뀐단다. 그 광고를 보면서 휴전선 비무장지대 내에 살고 있을 약용식물들을 그려보았다. 반세기 동안 우리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그곳에 어쩌면 인류 최후의 보고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인삼이나 은행만 하더라도 우리 토양에서 자란 것들이 타 지역의 것들보다 그 약효가 월등하게 높다고 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조차 잊혀진 채로 자라나고 있을 이들 약용식물을 하루 빨리 찾아내 연구,신약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