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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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옛날엔 더 추웠다'고 한다.
난방시설이 제대로 안됐던 탓인지, 진짜 기온이 더 낮았는지 모르지만 60년대엔 정말 추웠다.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었으니까.
여름에도 진짜 더웠다.
국내에 선풍기가 처음 나온 건 1960년 3월.금성사에서 만든 'D-301'모델이 효시였다.
하지만 라디오도 귀하던 시절 선풍기가 흔할 리 없었다.
참다 못하면 마당에서 찬물로 등목이라도 한다지만 그것조차 하기 힘든 사람들은 땀띠 때문에 고생하기 일쑤였다.
가려움을 참지 못한 갓난아기들은 울어제치고.교실 역시 찜통이었다.
한반 정원이 60명이던 시절 더위를 견디는 방법이래야 플라스틱 책받침으로 부채질하는 게 고작이었다.
풀먹여 다려 입은 교복은 반나절이 안돼 후줄근해졌다.
지금은 사무실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지만 80년대만 해도 선풍기에 의존하는 곳이 많았다.
틀면 서류가 날리고 끄면 푹푹 쪄도 급한 일을 처리하자면 껐고,모터 열기가 후끈한 낡은 선풍기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며 고마워하며 지냈다.
'선풍기로 학점을 매긴다'는 얘기도 좁은 연구실의 삼복 더위를 선풍기 한대로 나던 때의 산물일 것이다.
국민소득 증가의 힘인가.
어느 틈에 버스와 지하철에도 에어컨 바람이 나오더니 교실에도 에어컨을 놓고 일반가정의 에어컨 설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2년말 현재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38%.선풍기 판매는 94∼95년 연간 3백만대를 정점으로 줄어들어 지난해엔 2백50만대에 그쳤다고 한다.
그러더니 올들어 10년만의 무더위에 경기 침체,고유가가 겹친 탓인지 다시 선풍기가 잘 팔린다는 소식이다.
선풍기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다.
더위도 식히고,환기도 시키고,빨래도 말리고,젖은 머리도 말린다.
근래엔 종류도 탁상용,벽걸이형,천장형,침대 옆에 놓기 좋은 스탠드형,멀리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리모컨형 등 다양하다.
에어컨을 켜면 전기료가 엄청난 건 물론 조금만 더워도 못참고 냉방병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올 여름은 에어컨 대신 선풍기 옆에서 수박화채를 먹고 책도 좀 읽으면서 보내보면 어떨까.
잠잘 때 문을 닫고 오래 켜놓으면 땀구멍을 막아 체온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니 조심할 일이지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