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구조 개선 덫'에 걸렸다 ‥ 한은, 1분기 조사

국내 제조업체들은 지난 1ㆍ4분기(1~3월)중 매출액 이익률 등 경영지표가 크게 호전됐지만 투자는 거의 늘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부진에 따라 기업의 현금보유액은 41조원에 달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고인 10%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는 크게 개선했지만 현금을 쥐고도 새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재무구조 개선의 덫'에 빠진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16일 1천69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1ㆍ4분기 중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들의 1ㆍ4분기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3% 증가했다. 매출 증대와 더불어 수익성도 크게 호전돼,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13.4%로 작년 1ㆍ4분기(6.4%)보다 7.0%포인트나 상승했다. 이는 1천원어치를 팔아 작년 1ㆍ4분기에 64원의 경상이익을 낸 반면 올 1ㆍ4분기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1백34원을 벌었다는 의미다. 이같은 경상이익률은 2001년 분기별 재무제표 공시가 시작된 이래 분기 실적으로는 최고치다. 한은은 1ㆍ4분기 중 원자재가격 상승 등 교역조건이 악화됐지만 수출물량 확대, 환율 하락, 저금리 등이 제조업 수익성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의 총자산도 작년 말에 비해 3개월새 4.2% 증가했다. 또 부채비율은 3월 말 96.7%로 지난해 말(95.4%)보다 약간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1백%를 밑도는 낮은 수준이었다. 반면 제조업체들의 투자는 여전히 지지부진해, 대표적인 투자 지표인 유형자산 증가율이 1.3%에 그쳤다. 여기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공장 증설에 투자한 3조4천억원을 빼면 고작 0.4% 늘었을 뿐이다. 작년 1ㆍ4분기(0.2% 감소)보다는 나아졌지만 매출액과 이익률이 모두 두 자릿수 증가세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진한 수준이다. 이같은 투자부진은 기업들의 현금보유 증가로 이어졌다. 기업이 현금으로 들고 있는 자금은 3월 말 현재 4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SK 등 5대 기업의 예금만도 14조9천억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의 총자산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말 9.3%에서 10.0%로 높아지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국 기업의 경영실적 개선과 투자확대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돈이 돌지 않는 악순환을 빚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과소투자'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투자관련 규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