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相生의 길' 찾는다] (9ㆍ끝) '위기를 기회로'

지난 4월 22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은 이날 우수 법정관리인으로 뽑혀 법원으로부터 3년 연속 보너스를 받았다.
국내 최대 물류기업인 대한통운은 탄탄대로를 걷다 모기업이었던 동아건설에 대한 지급보증으로 동반 부도를 맞아 지난 2000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비운의 기업.


하지만 대한통운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며 법정관리 이후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법정관리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의 전담 물류업체로 선정되는 등 이름값을 해냈다.
통상 법정관리기업의 경우 매출이 30%가량 감소함에도 불구, 이 회사는 매년 매출 목표를 1천억원 이상 초과 달성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 노조위원장도 사재출연
대한통운 기사회생은 노사의 혼연일체가 바탕이 됐다.


곽 사장은 지난 2000년 9월 회사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임원들과 함께 개인자산을 담보로 내놨다.


노조는 성과금과 상여금을 반납하며 '무쟁의 선언'으로 화답했다.
노조위원장도 종업원들을 대표해 사재를 내놓는 등 회사 살리기기에 동참했다.


곽 사장은 이를 "전 직원이 혼연일체를 이룬 '영혼경영' 덕분"이라고 말했다.


경영에다 '영혼'이란 단어를 붙일 만큼 노사가 한 뜻으로 동고동락하며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의미다.


대한통운은 지난 98년 8백90억원의 적자에서 이듬해 흑자로 전환된 후 매년 4백억∼5백억원의 이익을 올리며 안정 궤도로 접어들었다.


법정관리 중에 본사 사옥을 사들이며 사세를 확장한 것도 대한통운이 처음.


정리계획의 일정보다 앞서 빚을 갚겠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췄다.



◆ 직원 1만명이 4천명으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지난 18일 올해 임단협을 무교섭으로 타결지었다.


노조가 회사측에 임금협상을 백지위임한 것은 이번이 연속 8년째.


16년 연속 무분규라는 기록도 이어졌다.


더구나 이 회사에는 상급단체를 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두고 있는 2개의 노조가 있다.


민노총 소속 노조가 단체협상을 회사측에 위임한 것.


두 차례의 인력구조조정으로 1만명이 넘던 직원을 4천명으로 줄였지만 노조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선뜻 이를 받아들였다.


김충훈 사장은 "당장 임금을 올려주기보다는 회사 상황에 대한 성실한 설명으로 노조를 끌어안았다"고 말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가족이 생산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방식을 통해 노사화합 기반을 쌓아 왔다.


이같은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지난해 매출 2조7백15억원, 영업이익 8백36억원의 경영실적을 달성, 삼성 LG전자와 더불어 당당히 '가전 빅3'의 대열에 합류, 자존심을 회복했다.



◆ 노조 활동도 잠정 중단


한보철강은 회사가 부도난 지난 97년 1월 이후 지난해까지 노조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노조의 고유권한인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반납한 것.


생산직 중심의 노조 대신 사무관리직까지 참여하는 '한가족협의회'를 통해 회사측과 주요 경영관련 의사결정을 협의해 왔다.


2000년에는 노사간 합의를 거쳐 1천14명의 임직원을 6백35명으로 줄였다.


한보철강 직원들은 부도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임금을 인상했다.


7년동안 임금 동결을 받아들이며 회사 회생에 기반을 마련한 것.


이같은 노조의 헌신적인 희생 덕분에 이 회사는 2001년 3천5백33억원이었던 매출을 지난해 5천3백억원으로, 영업이익은 1백83억원에서 6백27억원으로 늘리는 경이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보철강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INI스틸 컨소시엄이 인수 조건으로 종업원 전원 고용승계를 약속한 것도 그동안 노조가 보여준 헌신적인 희생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심기ㆍ송형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