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AP 테이프' 파문‥외교부-AP 누가 거짓말 하나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이라크에서 피살된 김선일씨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한 뒤 지난 6월 3일 한국 외교통상부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외교부가 '현재 실종된 한국인은 없다'고 답변했다."(AP통신) "AP통신측은 누가 언제 외교부의 누구에게 무엇을 물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라."(외교통상부) AP텔레비전뉴스(APTN)가 24일 아침 전세계에 배포한 김선일씨 비디오테이프로 인해 우리 정부와 통신사 간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문의받은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반해 AP통신은 김씨의 이름까지 거명하며 실종 여부를 물어봤는데도 외교부의 한 공무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AP통신 서울 주재 기자의 질문을 받은 외교부 공무원의 신원이 드러날 경우 외교부는 교민 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 입증돼 '국민의 공적'이 될 수 있다. 반면 AP측이 문의한 사실이 없거나 외교부 공무원의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애매하게 물어본 것으로 밝혀진다면 결과적으로 김씨 실종 사실을 늦게 알려 김씨의 피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조직의 명예를 건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 정부와 AP통신간 공방 =신봉길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은 정부의 공신력은 물론 개인의 생명과 관련 있다"며 AP통신의 구체적인 해명을 요구했다. 신 대변인은 "AP측이 해명을 거부할 경우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이와 관련, 잭 스토크스 AP통신 대변인은 "AP측은 독자적으로 한국인 실종자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공무원에게 피랍 관련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비디오테이프에서 김씨가 유괴당했거나 억류당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테이프에 어떤 개요나 설명도 담기지 않아 비디오테이프 송출을 보류했다"고 덧붙였다. ◆ 꼬리무는 의혹들 =외교부가 위험지역에서 한국인이 실종됐다는 문의를 받고도 보고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소홀히 대처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AP측의 '김씨 피랍 제보'에 관한 취재태도에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특정인의 실종여부를 확인하는 자세가 너무 안이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신 대변인은 "이라크에서 입수된 비디오테이프인 데다 한국인이라는 내용도 나오는 만큼 한국 정부나 이라크대사관에 보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고 AP측을 압박했다. 또 지난 21일 알 자지라방송의 보도로 김씨 피랍사실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는 데도 23일까지 사흘간 해당 테이프를 내보내지 않은 것도 언론기관 특성상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언론계 종사자들은 AP통신이 뒤늦게 공개하는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외교부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디오테이프 내용에 위협적인 장면이 없어서 AP측에서 사실확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 △AP측이 특종욕심에 독자적으로 신원확인에 나섰다가 보도시점을 놓쳤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