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책임지지 않는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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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회사는 왜 자체 경험손실률 기준으로 회계를 처리하지 않았습니까?"(회계법인)
"자체 경험손실률을 산정할 수 없어 금융감독원 지침대로 했습니다."(제2금융권 회사)
"우리가 보기엔 귀 회사는 자체 경험손실률을 충분히 낼 수 있고 그 기준으로 해야 회계장부가 정확할 것 같은데요?"(회계법인)
"……"(제2금융권 회사)
"아무래도 '적정'감사의견을 부여하기가 힘들겠네요."(회계법인)
"금감원 기준대로 했는데 '적정'의견을 못 준단 말입니까?"(제2금융권 회사)
"글쎄,그것은 금감원에 알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회계법인)
오는 7∼8월 제2금융권 회사의 회계감사 예상 풍경도다.
금감원의 '어정쩡한 태도'가 이같은 그림을 연상케 한다.
사정은 이렇다.
금감원은 지난달 12일 '재무보고에 관한 실무의견서'를 통해 금감원의 충당금 적립기준과 금융회사 자체 경험손실률 중 충당금이 많은 쪽을 잣대로 올 6월 말 회계를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금융회사,특히 신용카드회사와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은 자체 경험손실률로 충당금을 쌓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최근 경기가 나빠져 자체 경험손실률을 기준으로 삼으면 대규모 적자가 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금감원은 이런 호소를 받아들여 "자체 경험손실률 산정이 불가능한 금융회사는 기존 금감원 기준을 적용하면 된다"고 지침을 조정했고,지난 23일 이런 요지의 보도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금감원의 지침으로 인해 금융회사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당장 "자체 경험손실률 산정이 불가능한 금융회사의 범주는 어디까지냐"고 묻는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대략 은행을 제외한 제2금융권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라고 금감원이 못을 박기는 힘들다"고 답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금융회사가 금감원 기준대로 회계를 처리했는데 적정 감사의견을 못 받으면 금감원이 책임을 지는가"라는 질문에 금감원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아무래도 제2금융권의 회계대란을 막기 어려울 것이란 불길한 예감을 지우기 힘든 상황이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