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징벌적 배상제의 함정 .. 李相敦 <중앙대 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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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 시민단체와 이에 동조하는 변호사들이 기업을 상대로 한 징벌적 배상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현행 법체계는 선량한 피해자보다는 사악한 가해자 편에 서있기 때문에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견제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와 같은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을 왜곡해 여론을 오도하는 것이다.
세상 현상을 강자와 약자,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2분법도 어처구니없거니와 징벌적 배상 제도는 부작용이 너무 많아 정작 미국에서도 이를 폐지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은 민사소송에서 피고의 행위가 특히 도덕적으로 나쁜 경우에 법원이 재량으로 내리는 추가적 손해배상 판결을 의미한다.
1760년대 영국 법원의 판결에서 비롯된 이 제도는 얼마 후 미국에도 뿌리를 내렸다.
20세기 전반기까지 이 제도는 별다른 논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20년 간 소송남용이 심화됨에 따라 징벌적 배상제도는 집단소송과 더불어 미국을 '소송 지옥'으로 몰고 가는 원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배심원들이 황당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고,피해자보다 변호사들이 배상금을 더 많이 챙겨가는 현상마저 생겨 뜻 있는 변호사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된 것이다.
맥도날드의 뜨거운 커피로 화상을 입은 여인에게 16만달러의 손해배상 외에 2백70만달러의 징벌적 배상판결을 내린 것이 징벌적 배상의 대표적 사례다.
알래스카에서 유조선 사고를 일으킨 엑슨 석유회사에 대해선 1심에서 무려 50억달러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 판결이 내려져 10년여째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정당한 손해배상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과연 피해자들과 이들을 대리한 변호사들이 실제 손해액의 10배에서 수백배에 이르는 배상을 추가로 받아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경미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징벌적 배상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늘어나 변호사들은 대박을 노리고 소송을 마구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는 물론이고 웬만한 전문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히 미세한 부분 도색작업을 한 고급승용차를 판매한 자동차회사에 대해 4백만달러의 징벌적 배상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런 소송으로 인해 기업이 보다 윤리적 경영을 하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험적 연구는 징벌적 배상제도가 그런 효과를 가져오는 바가 거의 없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반면 징벌적 배상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업들은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 경영을 하게 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피고로 지정된 기업은 당연히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인데 이를 두고 피고가 반성하는 바가 없다고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는 것도 우스운 것이다.
실제 피해액을 훨씬 능가하는 징벌적 배상을 명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작년 미국 대법원은 과다한 징벌적 배상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샌드라 오코너 등 몇 명의 대법관은 징벌적 배상제도 자체가 헌법의 적법절차 조항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몇몇 주(州)는 징벌적 배상을 아예 폐지하거나 배상액에 상한선을 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미국 의회도 징벌적 배상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집단소송과 마찬가지로 징벌적 배상 제도도 원래 취지는 좋았으나 결국에는 소송남용이란 함정에 빠져 변호사들의 돈벌이 장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따라서 증권집단소송에 이어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면 가뜩이나 저조한 기업 활동과 투자를 위축시켜 부족한 일자리를 더욱 부족하게 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소송남용을 부추기는 반(反)기업적 제도를 새삼스럽게 도입하려고 애쓰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