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애꿎은 고객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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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한미은행 본점 파업현장. 금융산업노조의 한 간부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오늘 저녁부터 내일 오전 사이에 결말이 나지 않겠어. 월말인데다 반기말인데 은행에서 30일을 넘기는 '모험'을 하진 않을 거란 말이지.기자란 양반이 그런 기초적인 것도 예상을 못하나."
그러나 이 간부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29일 저녁 이후에도 상황은 한 발짝도 진전이 없었다.
한미은행 경영진은 일찌감치 퇴근했고 노조집행부도 수면에 들어갔다.
30일 오후 늦게나 돼서야 노사 양측은 가까스로 살무 협상 재개에 합의했지만 이는 지난 28일 오전 협상 결렬 이후 이틀이나 지난 뒤였다.
금노 간부의 예상이 이처럼 빗나간 것은 한미은행의 이번 총파업이 여러 측면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다른 금융회사들의 파업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첫 번째 차이점은 '노사간에 대화가 없다'는 점이다.
파업에 돌입한 후 노조측에서는 언론에 대고 "사측이 먼저 보따리를 풀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만 거듭했고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노조측 요구는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못된다"며 일축했다.
이번 파업의 또 하나 특징은 고용안정 보장,상장폐지 철회,경영권 독립 등을 제외하면 노사 양측간 세부 쟁점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측은 사측대로,노측은 노측대로 서로 상대의 무성의를 비난하지만 어느 한쪽도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애꿎은 한미은행 고객들만 불편이 커지고 있다. 일반고객들은 예금 입출금을 제외한 대다수 업무를 볼 수 없어 발길을 돌리고 있고 기업고객들은 어음할인 등이 안돼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지난번 조흥은행 파업때 하도 고생을 해 거래은행을 한미로 옮겼더니 여기도 마찬가지"라며 머리를 내젓는 한 고객의 푸념을 노사 양측에 전해주고 싶다.
송종현 경제부 금융팀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