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개혁이란 참 가슴을 설레게 .. 이봉구 <논설위원>

개혁이란 참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다.

낡은 것을 바꾸고 새롭게 혁신해 가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는 까닭이다.개혁이 없다면 사회 발전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면 누구나 개혁을 부르짖게 되고 참여정부가 부패청산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하지만 개혁이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의욕이 앞서고 명분에 치우치다 보면 자칫 도를 넘기 쉽다.

주식백지신탁제가 그런 예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취지야 좋지만 순기능보다는 역효과가 훨씬 클 것만 같아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내년 시행을 목표로 입법예고된 주식백지신탁제는 5천만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1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들에 대해 예외없이 주식을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신탁된 주식은 60일 이내에 매각토록 의무화돼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직무상의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차떼기로 정치자금을 받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로 부패가 만연한 상황이고 보면 공직자들에 대한 견제장치 마련은 너무도 시급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초강력 제도를 단숨에 도입하는 발상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공직자도 한 사람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필요 이상 제약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법안내용은 강도나 적용범위에 정말 문제가 많다.

우선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된다.

재산공개대상자 5천6백97명 중 주식보유자는 19.2%,5천만원 이상 보유자는 6.9%다.

또 대학총장이나 군장성 같은 경우는 기업관련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도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모든 고위공직자들에게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재산권을 행사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빼앗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일이 분명하다.

국민들의 공직진출기회를 박탈하고 국가 인재등용에 차질을 초래하는 것도 문제다.

공직을 맡는다는 이유로 부모 자식까지 모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면 과연 즐겁게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더구나 비상장기업의 경우 현실적으로 주식을 팔기도 어렵다.

기업 경영자들은 공직을 아예 맡지 말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경제현장에서 활동한 사람들의 노하우를 활용할 길이 봉쇄된다면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공직자 주식매각 사례가 적지 않지만 매각을 강요받지는 않는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으면 재산처분,신탁,직무회피,사임,전직 전보 같은 것 중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

그것도 직무연관성이 강한 경우로 한정돼 있다.

캐나다 역시 매각을 강제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위헌논란까지 빚으면서 굳이 초강력 제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공직자 견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주식을 매매할 경우 거래내역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거래사실이 일일이 공개된다면 정보를 이용해 매매할 어리석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래도 미심쩍은 거래가 있다면 철저한 조사를 거쳐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보완장치로는 주식 보유 공직자들이 관련분야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이미 입법예고까지 이뤄진 상황을 감안해 백보를 양보한다 하더라도 주식을 신탁하는 수준에 머물러야지 매각을 강요해서는 안될 일이다.제도의 근본 목적도 정책이 왜곡되는 사태를 막자는 데 있는 것인 만큼 일시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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