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LG칼텍스정유 여수공장.


플래카드만 남겨놓은 채 노조원들은 전원 공장을 빠져나갔다.
설비 재가동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일부 엔지니어들이 오가는 모습만 간간히 눈에 띌 뿐이다.


정작 태풍의 눈인 LG정유 공장은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적막감이 감돌고 있지만 이번엔 LG정유를 둘러싼 주변 공장들이 들썩이고 있다.


당장 LG정유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 여수산단 전체가 혼란


무엇보다 여수국가산업단지 석유화학 업체들이 난리다.
LG정유가 이 지역 나프타 공급의 40%(하루 8만배럴)를 도맡아 왔기 때문이다.


호남석유화학 여천NCC LG석유화학 삼남석유화학 등은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나프타를 하루 1만4천배럴씩 공급받아 폴리에스터 등 섬유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호남석유화학은 다음달부터 생산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원료공급의 30∼40%를 LG측에서 공급받고 있어 수입량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면서도 "선박 섭외 등 수입량 확대에 걸리는 기간이 적어도 한달 반은 걸릴 것으로 보여 생산차질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LG정유에서 아로마틱, 파라자일렌, 벤젠 등을 공급받아 폴리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산단내 삼남석유화학은 공급량의 70%를 의존하고 있어 타격이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여천공단은 LG정유에서 시작해 몇몇 주요공장을 통해 원료가 공급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LG정유의 셧다운은 산단 전체의 셧다운을 의미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벌써 가격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주 t당 8백30달러 정도였던 에틸렌(나프타에서 추출) 가격이 불과 1주일만에 80달러 오른 9백10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 발전소도 초비상


LG정유로부터 벙커C유를 공급받던 발전소도 비상이긴 마찬가지다.


LG정유에서 5분 거리의 여수화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이 발전소의 서성귀 기획감사과장은 "월별로 공급받는 벙커C유를 파업에 대비해 평상시보다 많이 받아놓은 상태지만 내달 16일까지 LG정유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할 경우 자칫 발전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LG정유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을 경우 탱크로리를 동원해 타사 공장으로부터 기름을 받아와야 하는데 그 또한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여수산단 전체가 멈춰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 보름 뒤 주유소 기름도 '뚝'


LG정유의 휘발유 경유 등 비축유 재고는 15일분 정도.


따라서 재고가 바닥나는 이달말이나 내달초 쯤이면 LG정유 간판을 달고 있는 전국 2천8백여개(26%) 주유소는 영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전국적인 수송 및 물류대란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나 에쓰오일 등 다른 정유사의 공급여력도 충분치 않다.


비수기인 8∼9월에 정기보수 계획이 잡혀 있어 추가 생산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수송수단 제약 및 유통망 부족도 정유소간 석유제품 이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LG정유 관계자는 "15일 정도 비축물량이 있어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만약 그 이후에도 완전복구가 안될 경우 해외 긴급수입 등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일 기자ㆍ여수=유창재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