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술과 문화산업 .. 이희국 LG전자 사장

이희국

요즘 극장가에서는'슈렉2''해리포터''스파이더 맨' 등의 외화(外畵)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세계 영화시장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이 영화들은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기법을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첨단 디지털 기술이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기술의 발전은 늘 또다른 생활양식과 문화의 창조로 이어졌다. 새롭고 다양한 표현기법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함으로써 풍부한 문화적 유산과 관련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던 것이다. 붓과 종이,사진의 발명이 그러했고 컴퓨터의 발명이 또한 그러했다.

선진국들은 남보다 앞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문화산업의 토대로 삼아왔다. 오늘날 그들이 누리는 문화산업의 경쟁력은 바로 기술이라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이제는 문화도 하나의 산업이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산업의 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그만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고,문화를 산업으로 육성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도 많은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디지털 기술은 우리 문화산업의 번영에 큰 기대를 가지게 한다.

우리에게는 거미줄처럼 깔린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와 이동통신 인프라가 있다. 최근 전송방식의 국가표준이 재확정된 디지털TV 방송과 곧 이어 도입될 데이터 방송도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하드웨어에서만이 아니라 게임 등 일부 콘텐츠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정상급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의 환경이라면 세계적인 문화상품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이를 문화산업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수한 인력들에 의해 새로운 산업 아이디어가 창조되고 실험이 이루어진다면 그 잠재력이 문화산업의 부흥으로 이어지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반도체,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등 여러 분야에서 이미 세계 1등을 이루었으나 문화산업분야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1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이 뒷받침되고 있으므로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을 문화산업을 일으킬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