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中企 상생의 협력

중소 제조업체인 삼화양행의 정해상 사장은 "요즘 꿈을 꾸는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5개월 만에 설비가동률이 75%에서 88%로 높아진 것도 그렇지만 골칫거리였던 제품 제조시간이 21시간에서 15시간으로 줄었기 때문이다.불량률도 2천ppm에서 4백90ppm으로 눈에 띄게 낮아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기 어려웠던 생산성 혁신을 그 짧은 시간에 달성했다는게 의심스러울 정도다.

"중국으로 떠날 생각 없느냐고요? 생산성이 이렇게 좋아지는데 구태여 나갈 필요가 있나요."(정 사장)삼화양행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지난 1월.치열한 경쟁으로 중국행을 신중히 검토할 때였다.

원청업체인 삼성전기가 5개월간 무료로 생산성 혁신을 위한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제안해온 것이다.

삼성전기가 추진하고 있는 '협력사 상생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3개 공장중 경남 김해공장이 대상이 됐다.

이 공장은 휴대폰 및 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PCB)에 각종 부품들이 들어앉을 수 있도록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 전량 삼성전기에 납품하는 곳이다.

가로 34cm, 세로 51cm 크기의 기판에 드릴을 이용해 1만5천개의 구멍을 뚫는 미세 작업이다."쓸데 없는 작업 때문에 인력과 시간이 엄청나게 낭비되고 있더군요. 삼화양행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삼성전기의 경쟁력도 높아지는 만큼 '내가 다니는 회사'라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심덕주 삼성전기 구매전략센터 컨설팅그룹장)

현황 분석 작업을 마친 삼성전기는 곧바로 강선중 협력업체육성그룹 과장 등 생산성 혁신 전문가 3명을 파견하는 동시에 'WIN-WIN 815'라는 구호를 던져줬다.

설비생산성을 85%까지 끌어올리고 1개 제품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15시간으로 줄이고 불량률을 5백ppm 미만으로 낮추자는 것.

당시 삼화양행으로선 불가능한 숫자였다.

삼성전기 컨설턴트들은 밤을 세워가며 공장의 레이아웃부터 바꿨다.

3m 너비의 드릴머신 좌우에 각각 놓여 있는 손수레들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배치된 드릴머신은 모두 69대.

직원들은 드릴 작업을 지켜보는 중간중간 손수레를 끌고 기판들을 드릴머신으로 실어나르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일일이 사람이 나르다보니 일부 드릴머신에는 대기물량이 쌓이는 반면 다른 기기는 놀고 있는 상태가 계속됐다.

삼성전기 컨설팅팀은 손수레를 없애는 대신 1천만원을 주고 무인 손수레를 주문 제작했다.

직원들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무인 손수레가 드릴머신을 찾아다니며 기판을 실어나르도록 한 것이다.

삼성전기 강 과장은 "이미 삼성전기에서 하고 있는 작업을 전수해준 것이지만 삼화양행 같은 영세업체는 상상하지 못한 시스템이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드릴머신들이 기판을 뚫고 나면 곧바로 다음 대기물량이 쌓이는 체제가 갖춰지면서 생산량이 대폭 늘었다.

이것만으로 4억원짜리 드릴머신 8대를 새로 들여놓은 효과가 생겼다.

또 1백38개 손수레들이 차지하던 공간 2백평이 생겨나고 효율성 증대로 24명의 잉여인력이 확보되자 회사는 이달말 드릴기기 11대를 추가 도입키로 했다.삼성전기는 올들어 10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컨설팅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김해=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