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다윗, 기 살려주기..김용배 <예술의 전당 사장>

김용배

"'올드보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한국영화의 쾌거!" 박찬욱 감독과 배우 최민식에게 쏟아지던 뜨거운 환성과 박수는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 같은 우리나라 영화계에 보내는 세계인의 찬사였다.시상식을 지켜보던 나 역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드디어 태생의 한계를 극복한 것인가?

오래 전 나는 영화 '벤허'를 보며 그 어마어마한 제작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스타워즈'에서는 지칠줄 모르는 상상력을,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지원해주는 그들의 제작환경을 부러워했다.그리고 유학시절 미국 땅에서 직접 확인한 그들의 실체는 더욱 놀라웠다.

영화관 수가 우리나라 영화관을 합친 수의 최소 1백배라는 것을 알았다.

상영관 수에서 1백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수입도 1백배 이상인 것은 당연하다.그러니 저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처음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불을 보듯 뻔한 싸움이었고,아무도 다윗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다윗은 태생의 한계를 깨고 칸의 하늘을 날아 올라 세계로 향한 날갯짓을 시작했다.하지만 우리 음악계에서는 골리앗과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외국 유명 연주자나,국내의 스타급 연주자들과 맞서야 하는 신인 연주자들이 또 다른 다윗인 것이다.

미국의 피아니스트들은 한 가지 프로그램만으로도 미국 내의 수많은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1백여회의 연주회를 갖는다고 한다.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2년여의 활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많으면 2∼3회 또는 단 한 번의 연주회를 열고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또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고,거기에 자신의 피와 땀을 쏟아야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도 세계적으로 우뚝 선 연주자들이 많으며,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아직도 그 힘든 길을 걷고 있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존경을 보낸다.

다윗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중들은 명성에 비해 터무니 없는 연주를 선보이는 외국 교향악단을 더 선호하고,열과 성의를 다하는 지방 오케스트라단이나 신인들의 연주회는 외면하고 있다.우리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골리앗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우리의 다윗이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의 시간을 조금만 나눠주는 것은 어떨까? 돌팔매를 잡은 어린 다윗이 꿋꿋이 두 발로 버티고 설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