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떠넘기기' 마찰 확산 ‥ 업계, 납품가 등 곳곳 실랑이

불황이 깊어지면서 거래관계에 있는 업종간에 납품가격, 대금결제 조건 등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으나 가격을 올릴 경우 시장에서 제품이 팔리지 않아 유화업체와 플라스틱업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식품회사와 계약농가 등이 납품가격 인상이나 대금결제기간 등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이같은 현상은 결국 비용을 서로 상대방에 떠넘기겠다는 것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하의 물가상승) 조짐과 맞물려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나프타 등 기초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석유화학업체들이 에틸렌 등의 가격을 인상할 움직임을 보이자 플라스틱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플라스틱업계는 '원유→나프타→에틸렌→폴리에틸렌→플라스틱 제품'으로 이어지는 생산라인에서 폴리에틸렌 가격이 급등할 경우 플라스틱가격도 함께 올려야 하나 내수침체로 그렇게 하기 힘들다며 항변하고 있다.프라스틱조합은 최근 연합회장 등 관계자들이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와 원료생산 대기업 7개사를 방문해 현황을 설명하고 가격안정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농업용 PE필름을 생산하는 충북 충주의 T사 관계자는 "원가부담이 커 최근 필름가격을 10% 올렸지만 농민들의 반발에 부닥쳐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며 제품가격 추가 인상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대금결제 조건을 둘러싼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원자재를 현금으로 구입한 후 외상으로 팔고 있는데 이때 받는 어음의 현금화 기간이 길어지는 추세다.

기협중앙회가 최근 1천5백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2ㆍ4분기 판매대금 결제상황'을 조사한 결과 어음판매대금의 현금화 기간(판매시점에서 현금 회수일까지의 기간)이 1백35.1일에 달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5일이 길어진 것이다.업종별로는 1차금속(1백56.1일), 가죽ㆍ가방 및 신발(1백53.9일), 섬유(1백50.7일), 화학(1백50.1일) 순으로 길어 이들 업종에서 거래업체간 마찰이 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마로 채소값이 오르자 김치를 만드는 식품업체와 채소 계약 농가간 불협화음도 들린다.

'종가집 김치'를 만드는 두산의 경우 포장김치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계약 농가들이 단가 인상을 요구해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배추 농가들은 농약가격 상승과 이상 기후로 수확량이 준 만큼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두산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흉작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지만 어느정도 보상을 해줘야 할지를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납품가격 갈등, 카드회사와 가맹점간의 수수료 인상 논쟁도 불황에서 촉발된 비용 떠넘기기 유형이다.

식품업체 CJ와 할인점 까르푸는 납품가격 협상 결렬로 지난 5월 이후 3개월째 거래를 중단하고 있다.

까르푸는 CJ 제품이 있던 매장에 대상 오뚜기 등 경쟁업체 제품을 채웠고 CJ도 납품가격을 현실화하지 않는 한 거래를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내수침체로 주수입원인 현금서비스 수수료가 줄어들고 있는 카드업체들은 최근 전국 5백만개 가맹점에 수수료를 올리기로 하고 업체별로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가맹점이 공동으로 반발하고 있어 계획대로 인상할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숙박 슈퍼마켓 등 가맹점 단체는 카드회사의 손실은 경영부실과 정부의 감독소홀로 인해 생긴 것으로 이를 가맹점에 전가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강창동 유통전문ㆍ정태웅ㆍ송태형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