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CEO 열전] (1) 프롤로그‥인생 걸고 '20년게임'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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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열심히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의 부와 사회적 지위도 갖췄기에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고 이른바 '기득권 계층'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들이 현실에 안주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글로벌 무한경쟁의 첨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주'란 '은퇴'를 의미한다.
책임의식도 갖고 있다.경기침체 청년실업 신용불량 반기업정서 등의 문제들이 상당 부분 경영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인정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이같은 배경에서 국내 대표 기업들의 CEO 25명을 긴급 인터뷰하게 됐다.
어려운 시대에 뭔가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인식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면담을 요청했고 대부분 선선히 응했다.젊은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과 경제에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는 얘기에도 공감을 해주었다.
과연 CEO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당부하고 싶을까.
또 그들의 청년시절은 어떠했을까.때로는 고단하고 외로웠을, 그래서 더욱 빛나는 그들의 청춘 얘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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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는가.
오랜 경쟁에서 누가 살아남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가.
현대 경영에서 CEO의 역할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CEO의 리더십이야말로 기업 경쟁력의 요체다.
하지만 정작 현직 CEO를 붙들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운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아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겸양을 나타냈다.
여기에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CEO를 꿈꿨느냐고 물어보면 그렇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저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섣불리 욕심을 내면 화(禍)를 입기 십상이라는 것이 그들의 대체적인 경험이자 경고다.
CEO들은 그러나 장차 CEO 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당부하는 것이 있다.
중도에 무너지지 말라는 것이다.
유관홍 현대중공업 사장은 "기본적으로 'CEO 게임'의 성격은 지루한 것"이라며 "요즘은 세대교체 바람으로 나이가 젊어졌지만 인생을 걸고 20년짜리 게임을 한다고 보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돈에 욕심을 내거나 잡스런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자멸하지 않는 것이 CEO로 가기 위한 첫째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달관'을 얘기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다보면 기회가 온다는 것.
"회사 인사를 하고 나면 '왜 나를 승진대상에서 뺐느냐'고 항의하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억울할 수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참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아집을 버리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겁니다."
CEO들이 그 다음으로 주문하는 것은 자기계발을 위한 끊임없는 분발이다.
목표와 비전을 세운 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입사 초기 몇번이나 사표를 쓰려고 망설였다는 이상운 효성 사장의 얘기다.
"일반적으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실망하기 쉬워요. 조직은 딱딱하고 봉급도 그다지 많지 않고…괜히 이 길로 들어섰나 하는 회의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과 회사가 같이 성장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이런 의구심들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재미가 붙는 거죠."
연구원으로 입사해 우여곡절 끝에 CEO에 오른 오세철 금호타이어 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업을 하겠다며 중간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가서 보니 '조직의 힘'을 알겠다는 거죠. 사실 발전하는 조직과 함께 가는 직장인은 행복합니다. 능력과 자신감을 갖게 되고 나중에 인정도 받게 되죠."
구학서 신세계 사장은 젊은 직원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계발'의 오류를 지적한다.
외부 학원 다니며 어학실력 키우고 석사-박사 학위를 따는 것으로 자기계발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 사장은 "사실은 일 자체가 공부"라고 말했다.
일을 잘하기 위한 업무능력은 스스로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학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자기계발이고 저녁 늦게 남아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더러 있는데 완전히 착각"이라며 "세칭 일류대를 나온 사람들일 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고 꼬집었다.
CEO들이 '달관'과 '자기 계발' 외에 마지막으로 중요하다고 여긴 덕목으로는 '주인 의식'.
회사 일이 바로 내 일이고 회사의 미래가 나의 미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지난 1980년대 일본의 '회사형 인간'을 연상케 하지만 20년 이상을 다닌다고 생각한다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현대모비스의 박정인 회장은 1969년 11월 현대그룹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신입사원 시절 현대자동차가 신진자동차에 밀리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야간-휴일 근무를 밥 먹듯이 했을 뿐만 아니라 휴가를 떠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는 것.
박 회장은 "당시 달력을 사도 '일요일' 글자가 평일처럼 검은 색깔로 돼있는 것을 골랐다"며 "좋은 동료들을 만나 '우리가 회사의 주인이니 마음껏 일하고 뜻을 펼쳐보자'는데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던 윤국진 기아자동차 사장은 1973년 울산공장 서무계장 시절 난데없는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당시 관련 법령이 바뀌어 직원식당에 조리사 자격자 배치가 의무화됐어요. 그런데 여기저기 수소문 해봐도 적당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학원을 다녀 자격증을 땄지요. 한동안 제 사진이 붙은 자격증이 식당에 걸려 있었습니다."향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는 날, 그 시절 배워둔 '당근으로 꽃모양 만들기' '무 채 썰기' 등으로 멋진 구절판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35년동안 휴일을 잊고 지냈던 그의 다짐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어느 정도의 부와 사회적 지위도 갖췄기에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고 이른바 '기득권 계층'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들이 현실에 안주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글로벌 무한경쟁의 첨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주'란 '은퇴'를 의미한다.
책임의식도 갖고 있다.경기침체 청년실업 신용불량 반기업정서 등의 문제들이 상당 부분 경영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인정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이같은 배경에서 국내 대표 기업들의 CEO 25명을 긴급 인터뷰하게 됐다.
어려운 시대에 뭔가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인식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면담을 요청했고 대부분 선선히 응했다.젊은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과 경제에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는 얘기에도 공감을 해주었다.
과연 CEO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당부하고 싶을까.
또 그들의 청년시절은 어떠했을까.때로는 고단하고 외로웠을, 그래서 더욱 빛나는 그들의 청춘 얘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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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는가.
오랜 경쟁에서 누가 살아남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가.
현대 경영에서 CEO의 역할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CEO의 리더십이야말로 기업 경쟁력의 요체다.
하지만 정작 현직 CEO를 붙들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운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아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겸양을 나타냈다.
여기에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CEO를 꿈꿨느냐고 물어보면 그렇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저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섣불리 욕심을 내면 화(禍)를 입기 십상이라는 것이 그들의 대체적인 경험이자 경고다.
CEO들은 그러나 장차 CEO 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당부하는 것이 있다.
중도에 무너지지 말라는 것이다.
유관홍 현대중공업 사장은 "기본적으로 'CEO 게임'의 성격은 지루한 것"이라며 "요즘은 세대교체 바람으로 나이가 젊어졌지만 인생을 걸고 20년짜리 게임을 한다고 보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돈에 욕심을 내거나 잡스런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자멸하지 않는 것이 CEO로 가기 위한 첫째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달관'을 얘기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다보면 기회가 온다는 것.
"회사 인사를 하고 나면 '왜 나를 승진대상에서 뺐느냐'고 항의하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억울할 수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참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아집을 버리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겁니다."
CEO들이 그 다음으로 주문하는 것은 자기계발을 위한 끊임없는 분발이다.
목표와 비전을 세운 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입사 초기 몇번이나 사표를 쓰려고 망설였다는 이상운 효성 사장의 얘기다.
"일반적으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실망하기 쉬워요. 조직은 딱딱하고 봉급도 그다지 많지 않고…괜히 이 길로 들어섰나 하는 회의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과 회사가 같이 성장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이런 의구심들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재미가 붙는 거죠."
연구원으로 입사해 우여곡절 끝에 CEO에 오른 오세철 금호타이어 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업을 하겠다며 중간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가서 보니 '조직의 힘'을 알겠다는 거죠. 사실 발전하는 조직과 함께 가는 직장인은 행복합니다. 능력과 자신감을 갖게 되고 나중에 인정도 받게 되죠."
구학서 신세계 사장은 젊은 직원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계발'의 오류를 지적한다.
외부 학원 다니며 어학실력 키우고 석사-박사 학위를 따는 것으로 자기계발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 사장은 "사실은 일 자체가 공부"라고 말했다.
일을 잘하기 위한 업무능력은 스스로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학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자기계발이고 저녁 늦게 남아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더러 있는데 완전히 착각"이라며 "세칭 일류대를 나온 사람들일 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고 꼬집었다.
CEO들이 '달관'과 '자기 계발' 외에 마지막으로 중요하다고 여긴 덕목으로는 '주인 의식'.
회사 일이 바로 내 일이고 회사의 미래가 나의 미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지난 1980년대 일본의 '회사형 인간'을 연상케 하지만 20년 이상을 다닌다고 생각한다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현대모비스의 박정인 회장은 1969년 11월 현대그룹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신입사원 시절 현대자동차가 신진자동차에 밀리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야간-휴일 근무를 밥 먹듯이 했을 뿐만 아니라 휴가를 떠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는 것.
박 회장은 "당시 달력을 사도 '일요일' 글자가 평일처럼 검은 색깔로 돼있는 것을 골랐다"며 "좋은 동료들을 만나 '우리가 회사의 주인이니 마음껏 일하고 뜻을 펼쳐보자'는데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던 윤국진 기아자동차 사장은 1973년 울산공장 서무계장 시절 난데없는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당시 관련 법령이 바뀌어 직원식당에 조리사 자격자 배치가 의무화됐어요. 그런데 여기저기 수소문 해봐도 적당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학원을 다녀 자격증을 땄지요. 한동안 제 사진이 붙은 자격증이 식당에 걸려 있었습니다."향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는 날, 그 시절 배워둔 '당근으로 꽃모양 만들기' '무 채 썰기' 등으로 멋진 구절판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35년동안 휴일을 잊고 지냈던 그의 다짐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