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남대교

'정조대왕 능행도'(일명 화성능행도,8폭)중 '노량주교 도섭도(鷺梁舟橋 渡涉圖)'는 1795년 윤 2월 16일 수원 현륭원(사도세자 무덤)에 갔던 정조대왕이 노량진에서 배다리(舟橋)를 건너 환궁하는 행렬을 보여준다.

배다리는 배를 가로로 이어 묶은 뒤 위에 나무를 깔아 만든 일종의 부교(浮橋)다.하지만 배다리는 어디까지나 왕의 행차를 위한 임시다리로 보통 사람들은 한강을 지나려면 나루터에서 배를 타야 했다.

한강엔 노들나루(노량진) 양화나루 한강나루(지금의 한남동) 광나루 뚝섬나루 서빙고나루 동작나루 삼개나루(마포진) 서강나루 등 수많은 나루가 있었는데 이들은 오늘날 모두 한강다리의 기점이 됐다.

1900년 이런 한강에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철도교가 등장했고,17년엔 첫 인도교인 한강대교(제1한강교)가 생겼다.지금의 양화대교인 제2한강교가 준공된 건 65년.제3한강교(한남대교)는 윤치영 시장(63년 12월∼66년 4월) 시절이던 66년 1월 19일 착공돼 김현옥 시장 때인 69년 12월말 준공됐다.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를 만들면서 강남지역 개발시대를 연 한남대교지만 66년 당시 서울시민 대다수는 착공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사동의 경우 63년 1월 경기도 광주군에서 서울로 편입되긴 했지만 서울의 한모퉁이인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할에 불과했고 따라서 언론보도도 이뤄지지 않았다.강남구에 속하게 된 건 75년 10월 구가 신설되면서였다.

어쨌거나 한남대교는 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영동1∼2지구 구획정리사업 등으로 강남북을 잇는 중심도로가 됐다.

그러나 고속도로 및 강남대로와 곧장 이어지면서 교통량이 엄청났고 그 결과 막히는 길의 대명사가 됐다.이랬던 한남대교가 8년 공사 끝에 마침내 왕복 6차로에서 12차로로 확장 개통됐다.

올림픽대로에서 한남대교로 진입하거나 한남대교에서 강변북로로 진출할 수 있는 만큼 전체적인 흐름이 빨라지고 강남북간 통행 또한 한결 수월해진다니 기대해볼 일이다.

넓은 다리를 건너온 차들이 좁은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와 버스전용차로로 인해 줄어든 강남대로를 어떻게 파고들지는 모르겠지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