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씨 두번째 소설집 '명랑' 펴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등단한 젊은 작가 천운영(32)이 두번째 소설집 '명랑'(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새로운 여성미학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 표제작을 비롯 한층 성숙되고 폭넓어진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는 8편의 단편을 실었다.첫 소설집 '바늘'에서 치밀한 취재력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묘사와 강렬한 이미지 전달에 치중했다면 이번에는 초점 이동이나 시점의 변화,소재에 대한 해석적 깊이가 더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표제작 '명랑'은 제목과 달리 명랑한 작품이 아니다.

작품 속 '명랑'은 민간에서 유통되던 약의 일종.주인공의 시어머니는 몸이 아플 때마다 수시로 하얀 가루인 명랑을 털어 먹는다.마치 명랑을 먹으면 목숨이 연장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다.

작가는 명랑이라는 약을 통해 나약한 인간의 고통스런 모습과 약에라도 매달려 삶을 이어가려는 인간의 본원적 모습을 대비시킨다.

명랑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던 할머니의 유골 가루를 조금씩 맛보며 '죽음'을 떠올리는 손녀의 모습은 천운영 소설의 근원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늑대가 왔다'는 '늑대가 왔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소녀의 이야기로 바꿔 놓은 작품이다.

숯을 굽는 가마가 있는 마을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녀는 자신이 알래스카 늑대의 보호를 받는 양치기 소녀라고 믿는다.

소녀는 늑대에 집착한다.늑대는 모녀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은유이며 소녀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부정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