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차베스와 룰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브라질의 룰라.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남미의 정치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좌파 대통령이란 점이다.중남미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리더들이다.

이들의 카리스마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서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출신성분과 성장과정을 보면 룰라가 훨씬 극적인 인생을 살았다.차베스는 교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육사를 졸업한 공수부대 장교출신의 엘리트인 반면 룰라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시작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0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으며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 출신이다.

가난 때문에 첫 번째 부인이 출산 도중 아이와 함께 사망하는 시련도 겪었다.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차베스가 훨씬 드라마틱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98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2000년 개헌을 통해 6년 임기를 보장받았으나 2002년 보수적인 군부 쿠데타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났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反)쿠데타 시위에 의해 48시간 만에 대통령직에 다시 복귀한 풍운아다.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군부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당시 "신의 것은 신에게,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국민의 것은 국민에게"라는 유명한 복귀성명을 남겼다.

얼마 전 야권이 주도한 국민소환투표에서도 실각할지 모른다는 예측이 난무했지만 빈곤층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직을 지켰다.

이들의 집권 배경은 비슷하다.

지난 90년대 중남미를 지배했던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패로 끝나면서 정권을 잡았다.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은 90년대 이들 지역의 경제성장을 유도,중남미가 한때 신흥경제권으로 부상하는 데 기여했으나 결국은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경제위기 등으로 더 이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여기에는 중남미지역에 남아 있는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

아르헨티나의 메넴,브라질의 카르도수,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 등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충실한 수행자들이었지만 모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차베스와 룰라는 정권을 잡은 배경이 비슷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에는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인 룰라는 예상을 뒤엎고 분배보다는 성장 위주의 개혁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집권 이후 제1화두를 경제회복에 두고 있는 것이다.

지지기반인 노동자계층에 불리한 연금개혁 재정긴축 등의 경제정책을 과감히 추진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결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다.

불만이 많은 지지계층을 설득과 협상으로 다독거리며 경제의 안정기조를 다져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덕분에 브라질의 대외신인도는 월스트리트나 국제기구 등에서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이에 반해 차베스는 철저히 지지계층인 빈곤층을 지원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부자를 악마로,부시 대통령을 마피아 두목으로 부르는 등 전형적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보이고 있다.

기득권층에 대한 공격으로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며 혁명적 사회개혁을 주창한다.

중산층은 점점 무너질 수밖에 없다.한마디로 룰라는 경제에,차베스는 정치에 '올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보다는 기득권 세력의 타파에 몰두하고 있는 차베스와 노동자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경제회생에 전념하는 룰라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