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탈진신드롬

이상이나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나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 앞에 헤어날 수 없는 벽을 느낄 때 사람들은 자신이 다 타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럴 경우 좌절감이나 상실감은 물론이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게 보통이다.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러한 탈진증세는 의사 간호사 상담사 교사 경찰 등 사람들을 상대하는 특정직업군에서나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직장이나 일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미국의 심리학자인 허버트 프로이덴버거는 이를 탈진신드롬(burnout syndrome)이라 명명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탈진신드롬이 사회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다.종전에는 과중한 업무나 직장내 원만치 못한 인간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으나,이제는 직업의 불안정과 자신의 장래에 대한 회의 등으로 정신적 압박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승진에 대한 가망이 없고 자기발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스트레스는 더욱 강해지고 탈진 역시 빨리 진행된다는 게 전문의들의 견해다.

특히 탈진신드롬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외부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 같다.탈진신드롬이 개인의 문제 뿐이 아닌 사회병리현상으로 번져 나가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연구도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버클리대학의 크리시티나 매슬랙 교수의 '탈진검사지'는 이런 점에서 참고할 만 하다.

탈진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인데 "나는 일 때문에 감정적으로 고갈되는 것처럼 느낀다.""나는 이 직장에서 근무한 이후 사람들에 대해 냉담해졌다."는 두 가지 사실을 한 달에 여러 번 느끼고,일주일에 단 한번도 "직장에서의 감정적인 문제를 차분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탈진상태가 높아 위험하다는 것이다.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전문처럼 문을 따라 빙빙돌다가 어느 날 문득 견딜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기대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쉽게 실망하며 탈진한다.

편한 대화상대를 찾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 심신을 편히 하는 방도 외에 무엇이 있을까.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