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지렛대는 뭐니뭐니 해도 '생각의 힘'이다.


우주와 생명의 비밀,부와 권력의 세습,전쟁과 무역의 경계,문화와 예술의 토양….
이런 것들을 가능케 한 근본 에너지는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의 머리에서 나왔다.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음,안정희 옮김,사이언스북스)는 3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인류 역사를 아이디어라는 키워드로 조명한 책이다.


영국 런던대 역사·지리학 교수인 저자는 1백78개의 아이디어를 각각 2페이지씩의 분량에 정리하면서 6백여 장의 그림과 사진을 함께 보여준다.
내용은 '내세''금기''국가''계급투쟁''우생학''상대성 이론'등 신화적 아이디어부터 첨단 과학의 아이디어까지 망라돼 있다.


이를 시대 순서로 구성하되 철학,역사학,신학,미학,고고학,인류학,심리학,수학,생물학 등과 교직하며 각각의 배경과 흐름을 압축해서 펼쳐보인다.


인류가 기억과 예측을 통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이는 천체의 주기와 자연의 리듬에 따라 신체의 리듬을 맞추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달력으로 짐작되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약 3만년 전의 것이다.


달력이 오랫동안 권력의 예속물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얼마나 힘이 셌는지를 알 수 있다.
20세기 들어서는 어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시공간에 대한 그동안의 이해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우주의 광대함에 대한 인간의 인식도 달라졌다.


'교역'은 경제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잉여생산물 처분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전통의식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공동체간의 가장 오래된 물물교환에는 불을 피우는 도구와 안료가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식상의 금기 때문에 불을 피우지 않는 부족과 안료를 필요로 하는 제사 관련자들의 수요 때문이 아닌가 추측한다.


선물교환과 이윤추구의 과정을 거쳐 국제무역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 밑에는 오랜 세월의 '의식'이라는 뿌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습'이라는 개념은 부와 권력,배타적 지위를 물려주려는 욕심에서 나왔다.


저자는 3만여년 전에 만들어진 모스크바 근처의 무덤을 예로 들며 세습 원칙이 고위 지배층을 자체적으로 충원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생명의 암호를 조작한다는 아이디어'에서는 복제양 돌리를 비롯 '유전적으로 설계된 생물'과 비자연적인 인간의 선택을 '위대한 사슬'이라는 역설적 제목으로 비춘다.


이 책에는 역사학과 고고학을 비롯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지식과 해설이 풍부한 이미지들과 함께 잘 어우러져 있다.


철학자와 문인·예술가 등 유명인의 명구와 인물사진,키워드별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추천도서'목록까지 실려있다.


관련된 아이디어끼리 페이지가 연결돼있기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보의 태엽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4백쪽,3만5천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